국내 최대 전자상거래 사이트 G마켓이 지난 26일 전자책 시장에 뛰어들었다. G마켓은 '전자책 50% 할인 쿠폰'을 내놓고, 인기 무협만화 '열혈강호' 시리즈 59권 전집을 종이책보다 80%가량 할인해 파는 등 고객 유치에 나서고 있다. 온라인 마켓인 G마켓이 디지털콘텐츠 판매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서민석 상무는 "2년 전부터 전자책 판매를 검토해오다가 전자책 유통 업체 텍스토어와 손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면서 "전자책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시장 반응을 테스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

지난 10여년간 지지부진한 성장세를 보여왔던 전자책 시장이 재기(再起)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전자책 리더기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이 보편화됐고, 불법 복제 우려 때문에 진출을 꺼려왔던 출판 업체가 하나 둘 전자책 출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책 시장에 뛰어드는 대형 업체들도 최근 늘고 있다. 구글·애플·삼성전자 같은 하드웨어 업체를 비롯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 교보문고·예스24와 같은 온·오프라인 서점 등 다양한 업체들이 시너지 효과를 위해 뛰어들었다. 최근엔 G마켓을 비롯해 신세계·GS홈쇼핑 등 유통 업체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신세계는 작년 7월 전자책 서비스 '오도독'을 선보였다. GS홈쇼핑은 사내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전자책 사업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는 전자책 서비스인 '리더스 허브'의 이름을 '삼성 북스'로 바꾸고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서비스 중이다.

전자책 확산, 읽는 습관 바뀌나

전자책 시장이 달아오른 데는 국내에 3200만대 이상 보급된 스마트폰, 200만대 이상 팔린 태블릿PC의 영향이 컸다. 모바일 제품의 화면이 커지고 선명해지면서, 종이책을 선호했던 사람들도 '전자책 한번 읽어볼까'하고 차츰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중·장년층은 종이책이 더 익숙하지만,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과 친숙하게 지낸 이른바 '터치 제너레이션' 청소년들은 모바일 기기로 책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글로벌 IT컨설팅업체 액센츄어 고광범 전무는 "이미 청소년들에게 콘텐츠는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으로 소비하는 것이란 인식이 생겼다"면서 "음악·동영상은 물론이고 글도 전자책으로 읽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부 학교에선 교과서 대신 태블릿PC에 책 내용을 담아 수업에 시범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전자책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는 2011년 1400억원에서 작년 1512억원으로 약 8% 성장했다. 올해는 20% 이상 비약적으로 성장해 1800억원 규모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향후 3년까지 종이책 시장은 매년 3%씩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만, 전자책은 연평균 30%씩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출판 업계 지형도 꿈틀

시장이 성장하면서 새로운 전자책 유형도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책 한 권을 다 읽는 게 부담스러운 만큼 책을 목차별로 쪼개서 출판하는 이른바 '클리핑(clipping) 출판'이 자리 잡고 있다. 전자책 유통 업체 리디북스는 '스토리홀릭'이란 앱을 통해 챕터 단위의 책을 제공하고 있다. 서점에서처럼 미리 책을 훑어보지 못하는 만큼 목차 하나를 먼저 읽어보고 마음에 들면 나머지를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이 있는 챕터만 별도로 구매할 수 있어 경제적이다. '카카오톡'을 서비스하는 카카오도 다음 달 중순 출시하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출판 업계 지형도 바뀌고 있다. 출판 시장에서 사라졌던 만화·무협지·로맨스 등 장르 문학이 부활한 것도 '전자책의 힘'이다. 텍스토어 관계자는 "1990년대 말 만화 대여점의 쇠락과 함께 사라졌던 B급 문학이 전자책을 통해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인기 만화 시리즈인 '열혈강호'는 텍스토어·교보문고 등 전자책 유통사를 통해 부활해 총 500만권 이상이 팔린 것으로 집계된다. 일본에는 만화책 전문 전자책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국내외 고전소설도 전자책을 통해 다시 빛을 보고 있다. 출판사 열린책들이 지난달 내놓은 '세계문학 앱'은 국내 앱스토어 1위에 올랐다. 고전문학이 게임을 밀어내고 인기 순위 1위에 오른 것은 출판계에 신선한 자극이 됐다.

이 회사는 저작권이 소멸된 '죄와 벌' '위대한 개츠비' 등 고전을 전자책으로 내놓고 있다. 해당 앱을 개발한 북잼의 조한열 대표는 "세계문학 앱이 탐나서 아이패드를 샀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라면서 "독자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예쁘게 만드는 것이 전자책 제작의 노하우"라고 말했다. 예스24도 작년 말 전자책 전용 단말기 '크레마 터치'를 선보이면서 소설가 박경리씨의 '토지'와 조정래씨의 '태백산맥' '한강'을 전자책으로 선보였다.

전자책 시장의 인기 작가도 등장했다. 리디북스에서 짧은 시를 연재하며 유명세를 탄 하상욱씨가 대표적이다. 리디북스 김안나 팀장은 "기존 문학계에서는 신춘문예를 통해야만 데뷔할 수 있었다"면서 "전자책 시장이 커지면서 일반인들도 손쉽게 문단에 데뷔하고 글 쓰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