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난을 이유로 공공요금 인상을 요구해온 공기업들이 자구 노력은 없이 임원 연봉 인상에 나서고 있다. 평소엔 국민에게 손을 벌리면서, 자기 속만을 챙기는 모습에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28일 금융감독원과 업계에 따르면 올 정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의 보수 한도를 높이려는 공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향후 임원 연봉을 결정할 때 총액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연봉 인상이다. 증시에 상장된 공기업 7개 가운데 한국전력공사·한국가스공사 등 6곳이 1~4.9%를 높이기로 했다. 카지노 기업 그랜드코리아레저만 동결 수준으로 결정했다. 대부분의 민간 기업이 불경기를 맞아 한도를 동결한 것과 비교해 '해도 너무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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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일제히 주총 열고 결정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외에도 한국지역난방공사·한전KPS·한국전력기술 등 5개사는 29일 열리는 주총에서 인상안을 결정할 예정이고, 강원랜드는 지난 21일 열린 주총에서 1.8%를 올리는 안을 통과시켰다.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는 공기업들도 연봉 인상에는 한목소리다. 지난해 영업적자 8179억원을 기록한 한전은 이번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작년보다 4.5% 높은 20억8339만4000원으로 정하기로 했다. 수조원대의 미수금과 높은 부채비율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온 가스공사도 3.3% 인상안을 내놨다.

최근 원전 설계 유출 사건이 터진 한국전력기술은 4.9% 올리기로 했고, 원전 유지보수 업체인 한전KPS는 1% 올리기로 했다. 열병합발전소 등을 운영하는 한국지역난방공사도 3.1% 인상안을 내놨다. 이 가운데 임원의 숫자가 늘어난 곳은 한 곳도 없다.

12월 결산 법인 기준 시가총액 상위 10대 기업(공기업 제외) 가운데 올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확대한 곳은 이사 2명을 늘리기로 한 삼성전자 한 곳뿐이다. KTKT&G 등 민영화된 옛 공기업들도 동결을 결정했다.

◇공기업, 무조건 인상 관행 문제

관성적으로 해마다 임금을 올리는 것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전은 2010년부터 해마다 한도를 높여 3년 만에 8% 넘게 올렸다. 해당 공기업들은 "정부의 올해 공기업 예상 편성 지침에 맞춰 결정한 것이지 임의로 올린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 지침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일 뿐 올리라는 지침이 아니다. 기재부 관계자는 "공기업 기본인상률 2.8%는 범위 내에서 정하라는 상한 개념"이라며 "또 1인당 급여가 아니라 회사 전체 인건비에 대한 기준"이라고 말했다. 공기업들이 자기식대로 해석해 인상 근거로 활용한 것이다.

재무구조 개선과 관련해 마땅한 자구 노력은 없으면서, 2억원 수준의 고액 연봉을 받는 임원들이 제 몫을 챙기는 모양새도 볼썽사납다. 정부는 한전의 적자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올 초 전기요금을 평균 4% 올렸고, 가스공사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선 도시가스요금을 지난달 22일부터 평균 4.4% 올렸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말단 직원도 아니고, 경기도 안 좋은데 임원 연봉 인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국민이 좋게 보겠느냐"며 "주총에서 이사 보수 한도와 관련해 의견을 제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