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에 있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의 서민금융 통합콜센터엔 26일 1만5000통의 문의 전화가 쏟아져 들어왔다. 평소 하루 4000통에 그쳤던 전화가 4배가량 늘었다. 정부의 빚 감면 대책인 국민행복기금 계획이 발표되자 문의전화가 폭주한 것이다. 대부분은 "내가 감면 대상자인지"와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는데 감면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묻는 전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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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캠코 직원들은 문의전화에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연체자들의 빚 목록이 캠코에 다 모여 있지도 않을뿐더러, 어느 금융사에서 빌린 빚을 감면해 줄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5일 박근혜 정부의 대표 공약인 국민행복기금 운영방안을 발표했지만, 실행 계획이 설익은 채 급조돼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의 재촉에 발표를 서둘렀지만, 실제 계획이 가동되는 것은 연체자의 신청이 접수되는 4월 22일부터다. 또 사채업자나 연대보증 채무를 지고 있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허점이 많아 벌써부터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연대보증 채무자는 해당 안 돼

국민행복기금의 감면 대상자는 1억원 이하의 개인신용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하고 있는 사람이다. 작년 8월부터 빚을 갚지 못하고 있으면 대상자가 된다는 뜻이다. 1억100만원 연체했거나, 작년 9월부터 연체하기 시작한 사람은 빚 탕감을 받을 수 없다.

남이 빚을 질 때 연대보증을 서 줬는데 그 빚이 연체된 경우라면 부채 탕감 대상자가 안 된다. 은행권의 연대보증은 지난 2008년 폐지됐지만, 제2금융권에서는 연대보증이 아직 남아 있다. 만약 실제 빚을 진 사람이 국민행복기금에 감면을 신청하면 연대보증 채무도 자연스럽게 해소되겠지만, 아예 잠적해 버렸다면 연대보증을 서 준 사람으로선 방법이 없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국민행복기금 제도로는 연대보증인 채무 구제책을 찾을 수 없어 계속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빚을 연체했더라도 갚지 않고 수수방관했으면 국민행복기금의 대상이 되고, 어떻게든 갚아 보려고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채무조정을 받아 빚을 갚고 있는 경우는 대상이 되지 못한다.

신복위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원금을 감면해 주진 않는다. 이에 반해 국민행복기금은 원금의 최대 70%를 감면해 준다. 빚을 갚아 보겠다며 신복위를 이용한 사람들이 역차별을 당하는 셈이다.

160개 대형 대부업체에 빌린 돈은 국민행복기금 수혜 대상이 되지만, 나머지 9000여곳의 중·소형 대부업체나 미등록 사채업자에게 빌린 돈은 국민행복기금 감면 대상이 되지 못한다. 만약 3000만원을 저축은행에서 빌리고, 1000만원을 생활정보지 등을 통해 소형 대부업체에서 빌렸다면 3000만원만 국민행복기금에서 처리해 주는 식이다.

"빚을 성실히 갚아온 사람은 호구냐"는 지적도

금융당국이 추산한 국민행복기금 대상자는 32만명으로, 대출자 1800만명 중 2% 정도다. 나머지 98%는 '불공정하다'는 느낌이 들기 쉽다.

월 150만원 벌이로 신복위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이용해 2년째 월 20만원씩 갚고 있는 이모(46)씨는 "꼬박꼬박 빚 갚는 사람만 호구 아니냐. 대통령 선거가 있는 5년마다 한 번씩 이렇게 빚을 까 주지 않겠느냐는 말을 주변에서 한다"고 말했다.

기왕의 신용회복지원 제도들과 내용이 별로 다르지 않아 실효성이 크지 않을 거라는 지적도 있다. 빚을 절반 이상 탕감해 줘도 소득이 없으면 나머지 빚도 갚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결국 파산할 사람들이 국민행복기금의 돈만 축낼 것이란 비판도 있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빚 감면이 문제가 아니라 결국 일자리를 통한 자활이 관건인데, 국민행복기금 운용계획에는 이 부분에 대한 고려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