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주 장기철씨는 27년 동안 화물차로 창원공단 업체들이 생산한 제품들을 부산항으로 옮기며 생계를 꾸려왔다. 7월 마산만에 인접한 가포신항이 개장하면 장씨는 부산항까지 갈 필요 없이 가까운 마산에 물건을 부리면 된다. 하지만 요즘 장씨 안색은 밝지 않다. 마산과 창원을 잇는 마창대교 통행료가 너무 비싼 탓이다.

장씨는 “부산 광안대교의 화물차 통행료가 1500원(25톤 기준)이지만 마창대교 통행료는 5000원이나 된다”고 말했다. 장씨가 몰고 있는 25톤(t) 차량은 부산 광안대교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대형 이상’으로 분류돼 1500원을 내야하고, 마창대교에서는 최고 등급인 ‘특대형차’에 속해 이보다 훨씬 많은 5000원을 내야한다. 광안대교 길이(7.4km)의 4분의 1밖에 안되는 마창대교(1.7km)를 건너면서 요금은 무려 3배 이상을 내는 것이다.

마산과 창원을 잇는 마창대교 모습.

장씨는 경남도청 관계자에게 통행료를 낮춰달라고 요청했다. 이미 상당수 화물차주가 담당 공무원에게 장씨와 같은 민원을 제기했다. 도청은 통행료를 낮출 방안을 찾고 있지만 요금 인하가 수월하지 않다. 마창대교 사업자가 통행료 인하협상을 거부한 탓이다. 마창대교는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세워졌다. 따라서 최대주주는 민간업체이다.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인프라)가 마창대교 운영업체의 지분 70%를 보유하고 있다.

맥쿼리인프라가 요금 인하에 동의하지 않으면 도청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맥쿼리인프라는 전국 13개 도로, 터널,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을 운영하는 사업자의 대주주로 지방자치단체들과 곳곳에서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 MRG 협정은 정부 부처와 지자체의 공동 실수

맥쿼리인프라가 요금 인하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도청의 고민은 해소되지 않는다. 통행료 수입이 줄면 그만큼 도청이 민간 사업자에게 물어주는 금액이 늘어난다. 도청이 투자 유치 과정에서 민간 투자사에게 최소수입을 보장한 탓이다. 통행료 수입이 미리 약정한 수익에 미달하면 지자체가 그 차액을 민간 투자자에게 보전한다는 최소수익보장(MRG·Minimum Revenue Guarantee) 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투자 위험은 고스란히 지자체에게 전가되고 민간 투자사는 안정적으로 수입을 챙길 수 있는 구조다. 지자체들은 MRG 규정 탓에 해마다 상당한 금액을 맥쿼리인프라에게 보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회기반시설(SOC) 투자를 유치하면서 최소수입을 보장하는 것은 한국밖에 없을 듯하다. 명백한 계약 실패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진욱 맥쿼리자산운용 전무(미국 변호사)는 “전국 13개 사업장 중 맥쿼리가 사업 기획단계부터 관여한 곳은 많지 않다. 맥쿼리는 MRG 규정이 있는 사업장의 지분을 건설사 등 초기 투자자로부터 인수했을 뿐이다”고 해명했다.

계약 실패의 책임은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에게 있다. 기획재정부는 민자사업의 계약지침을 만들었다. 민자사업 근거 법령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외환위기가 터지자 사회기반시설사업(SOC) 건설에 들어갈 재정이 부족해졌다. 이에 정부는 민간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해당 법규에 MRG 규정을 삽입했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거듭되자 현행 개정 법령에는 MRG 규정을 없앴다.

지자체들은 협상 과정에서 정부 부처의 계약 지침을 따랐다. 일부 사업의 경우 국토해양부가 직접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상근 세림회계법인 회계사는 “지자체는 주요 계약 내용을 판단할 역량이 없다. 계약 지침을 입안하고 사업성을 검토한 중앙부처 관계자들에게 계약 실패에 때한 1차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 수요 예측 실패가 MRG 터무니 없이 높여

지자체들은 수요예측에도 실패했다. 수요예측은 사업성 판단의 지표일 뿐만 아니라 MRG을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 MRG 수준을 정하려면 도로나 교량의 통행량을 추정해야 했다. 통행량이 과다 추정되면 MRG는 오르기 마련이다. 외부 연구기관들에 맡겼으나 어찌된 일인지 통행량을 하나같이 과다 추정했다. 마창대교의 통행량 추정 작업은 서울대 공학연구소와 큰길교통기술연구소이 각각 맡았다. 통행량을 과다하게 추정하니 MRG 수준이 올라갔다. 이 탓에 경남도청은 113억원을 보전해야 했다.

우면산터널 사업도 비슷한 실수가 있었다. 서울시 산하 시정개발연구원(시정연)은 7년 연구 끝에 2004년 보고한 ‘우면산 터널 통행량 추정’에서는 2012년 교통량을 6만2788대로 예상했으나 2011년 보고서에는 그 절반도 안 되는 2만7738으로 수정 보고했다. 2025년 통행량도 2004년 7만6000대로 추정했다가 2011년에는 3만4634대로 줄였다. 통행량 추정의 오류를 뒤늦게 바로 잡으려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만하다.

전문가들은 맥쿼리인프라가 수요예측에 관여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대순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는 “우면산 사업의 경우 맥쿼리인프라가 수요 예측에 개입했다는 정황까지 나온다. 겉으로는 서울시 시정 연구소가 통행량을 예측했지만 실제로는 (맥쿼리인프라가) 목표 수익에 맞춰 통행량 예측치를 껴맞추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진욱 맥쿼리자산운용 전무는 “맥쿼리가 수요예측에 개입한 적이 없다. 지자체들의 요청에 따라 외부 연구기관들이 통행량 예측 업무를 수행했다”고 해명했다.

당시 시정연 책임자와 실무자는 MB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백용호 당시 시정연 원장은 MB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 국세청장, 청와대 정책실장이라는 요직을 두루 거쳤다. 통행량 예측 연구 책임자였던 황기연 홍익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청계천 복원사업 단장을 거쳐 한국교통연구원 원장을 맡았다.

◆ 협상 과정과 실계약도 모두 비밀

계약 실패의 원인과 책임자를 규정하려해도 알 길이 없다. 관계 부처와 지자체들은 협상 과정과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지자체들은 "민자사업 협상 내용이 영업기밀이라고 공개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기획실장은 "건설사나 투자자에게 어떤 특혜가 제공됐는지 알 길이 없다. 실시협약서도 공개하지 않으니 사업성을 검토한 사람도 알 수 없다. 공공사업이 이처럼 비밀리에 진행됐으니 잡음이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지난해 말 민자도로의 통행료를 올렸다. 계약 당시 요금 인상을 약정한 탓이다. 요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통행료 수입 부족분을 재정으로 사업자들에게 보전해야한다. 이 탓에 인천공항(40.2km) 도로는 7700원에서 8000원으로, 인천대교(12.3km)는 5400원에서 5600원으로 인상해야 했다. 맥쿼리인프라는 인천공항 도로 지분 24.1%와 인천대교 지분 41%을 보유하고 있다. 천안-논산 고속도로는 8700원에서 9100원으로 400원 올랐다. 이곳의 맥쿼리인프라 지분은 6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