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전남 고흥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동에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들이 소형위성발사체 나로호의 발사에 앞서 컴퓨터 단말기를 통해 발사대 준비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발사통제동은 나로우주센터의 뇌 역할을 한다. 조선일보DB

3월이지만 여전히 뺨이 시릴 정도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던 8일 오전 전남 고흥 나로우주센터. 나로호 발사 성공의 벅찬 감동을 전해준 역사의 현장은 어느덧 잔치가 끝난 집처럼 조용히 변해 있었다. 나로호를 세웠던 발사대는 텅 비었고, 발사준비로 분주했던 연구원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센터 곳곳에는 발사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소형위성발사체(KSLV-1) 나로호가 발사된 나로우주센터 발사대와 우주센터를 하늘에서 내려다 본 모습. 발사에 앞서 나로호의 상태는 나로우주센터 곳곳을 연결하는 첨단 정보기술(IT)을 이용해 시시각각 확인됐다. 조선일보DB

우주센터에 들어서 바다를 끼고 꼬불꼬불한 언덕길을 따라 발사통제동에 도착했다. 이날 항우연은 나로우주센터 발사통제시스템을 언론에 최초로 공개했다. 발사통제시스템은 발사체로부터 내려오는 원격추적(텔레메트리) 정보를 받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각 센터에 전달하는, 인체의 중추신경계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다.

◆ 신경망처럼 중앙전산실과 각 시스템 연결하는 통신망

최용태 항우연 선임연구원은 "발사통제시스템은 100%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정보통신(IT) 기술의 결정체"라고 말했다. 자료처리시스템은 국내 기업인 탑엔지니어링이, 대내·외 통신망은 SK C&C가 각각 항우연과 함께 개발했다.

중앙전산실이 인간의 뇌와 같은 기능을 한다면, 임무망(통신망)은 신경, 발사체 등에 달린 센서는 감각 기관의 역할을 한다.

발사체와 레이더, 원격자료 수신장비 등이 곳곳에 달린 센서를 통해 현재위치나 상태 등 183가지 정보를 감지하면, 통신망(임무망)은 이를 중앙전산실 내 비행정보중앙처리시스템에 전달한다. 센서가 사람의 눈·코·귀 등 감각 기관이라면 중앙전산실은 뇌, 통신망은 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신경망 기능을 하는 셈이다.

비행정보중앙처리시스템에 전달된 발사체 위치 등의 정보는 분석과 정리 과정을 거쳐 다시 임무망을 통해 비행안전정보시스템과 원격수신자료전시시스템 등으로 전달된다. 뇌에서 각 신체 부위에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다.

자료처리시스템은 총 86대의 서버와 컴퓨터로 구성됐다. 이 중 비행안전통제시스템은 발사체의 현재 위치나 상태에 문제가 있을 경우 비행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최 선임연구원은 "현재 위치 자체보다는 지금 추진력을 강제로 중단시켰을 때 발사체가 어느 위치에 추락할지를 실시간으로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추락할 때 발사체에서 나오는 파편의 형태까지도 미리 예측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선임연구원이 장막을 걷어내자, TV와 뉴스를 통해 많이 보았던 발사지휘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구원들이 화면을 통해 발사 통제 정보를 분석하며 우주센터 내 주요 시스템의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곳이다. 최종 발사 15분 전부터는 결함이 발견될 경우 발사지휘소 내 비행상태전시시스템에 의해 카운트다운이 자동 정지된다. 최 선임연구원은 "실제로 2009년 8월 발사를 7분 56초를 남기고 소프트웨어 결함 때문에 자동으로 발사 중지 명령이 내려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같이 각 자료처리시스템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나면 실시간 데이터가 중앙전산실 내의 미션정보분배시스템에 보관된다. 대뇌의 '해마'(장기 기억과 학습에 관여하는 부분)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지난 1월 30일 오후 4시 정각 나로호가 발사대에서 힘차게 솟아오르고 있다. 2차례 발사 실패의 아픔을 겪은 이날 나로호는 '2전3기' 도전끝에 발사에 성공했다. 조선일보DB.

◆ 통신망 충돌 막으려 5개로 분류…휴대폰도 차단

최 선임연구원은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과정에서 데이터통신망끼리 충돌하면 안 되기 때문에 특성에 따라 통신망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발사통제시스템에서 사용되는 임무망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아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뿐 아니라 발사 20분 전에는 이동전화 전원까지 차단해야 한다. 이동전화의 주파수와 발사통제시스템 내 주파수가 충돌해 발사체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파수가 서로 분리돼 있지만, 무선주파수(RF) 장비 특성상 할당받은 주파수 대역을 넘어갈 가능성도 없지 않아서다.

나로호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고 한숨을 돌렸지만 나로우주센터의 임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항우연은 나로호의 후속 사업으로 2021년까지 한국형 발사체 ‘KSLV-Ⅱ’를 개발해 쏘아 올릴 계획이다.

항우연은 나로호가 발사됐던 자리 옆에 KSLV-Ⅱ를 위한 제2 발사대를 짓기 위해 준비 중이다. 공간이 모자라 산의 일부를 깎아야 할 정도로 큰 공사다.

한국형 발사체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발사통제시스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진다. 최 선임연구원은 “처리해야 할 데이터의 양이 크게 늘어 인터페이스(시스템, 장치, 소프트웨어 따위를 서로 이어주는 부분) 등을 확충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