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장에서 한두 번은 돈을 딸 수도 있지만 계속 하다 보면 결국 돈을 다 털리게 된다.

도박장에서 플레이어가 돈을 딸 확률을 낮추는 방법으로 수수료를 떼가기 때문이다.펀드 투자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수수료를 많이 떼는 펀드일수록 수익률이 낮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 같은 현상은 투자 기간이 길수록 도드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 기간이 3년이 넘고 설정액이 10억원 이상인 국내 주식형펀드 275개가 분석 대상이 됐는데, 펀드에 투자할 때 드는 비용이 운용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총비용 보수비율)이 상위 20%인 펀드 13개의 10년 누적 수익률은 평균 221.7%에 그쳐 수수료율 하위 20%인 펀드 13개의 298.0%에 비해 76.3%포인트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펀드에 투자할 때 드는 비용이란 판매·운용 보수와 거래·환매 수수료, 관련 세금을 모두 합친 것이다.

투자 비용이 상위 20%인 펀드는 이 비율이 평균 2.3%였지만, 하위 20%는 1.3%였다. 1억원을 투자할 때 총비용 보수비율 상위 20% 펀드의 경우 비용으로 연간 230만원을 떼지만, 하위 20%는 비용이 130만원에 그친다는 뜻이다. 에프앤가이드 김희수 이사는 "수익률을 계산할 때 투자 비용을 빼기 때문에 수수료가 많은 펀드는 수익률 면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수익률 격차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투자 기간 길수록 심해져

투자 비용이 많이 들수록 수익률이 낮아지는 현상은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심해졌다. 투자 비용 상·하위 20%인 펀드의 3년 누적수익률은 각각 16.8%, 17.5%로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차이는 5년이 지나면 5.6%포인트(6.8%와 12.4%)로 벌어졌고, 10년 후에는 76.3%포인트까지 확대됐다.

개별 펀드의 수익률을 코스피 10년 상승률(218.2%)과 비교한 결과, 투자 비용 상위 20%인 펀드 13개 중에서 수익률이 코스피 상승률을 넘어선 펀드는 4개뿐이었다. 반면 하위 20%인 펀드 13개 중에선 12개가 코스피 상승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김희수 이사는 "펀드 수익률이 장기적으로 주가지수 수익률과 비슷하게 수렴된다"며 "투자 기간이 길어질수록 투자로 인한 수익률 자체는 비슷해지기 때문에 결국은 투자 비용이 최종 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말했다.

◇투자 종목 잦은 교체도 수익률 저하 요인

편입된 주식들을 자주 사고파는 펀드일수록 수익률이 좋지 않다는 분석도 나왔다. 투자 비용에는 펀드 매니저가 주식을 사고팔 때 내는 거래 수수료가 포함되기 때문에 투자 주식을 자주 교체할 경우 비용이 늘어나 수익률이 떨어지는 것이다.

높은 수수료가 낮은 수익률로 이어지는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2조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뱅가드 그룹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 영국·미국·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등의 주식형 펀드를 분석한 결과 수수료율이 낮을수록 수익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증시 침체로 '대박 펀드'를 기대하는 투자자가 줄고 낮은 비용이 펀드 선택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펀드 투자 비용은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현대증권에 따르면 한국 주식형펀드의 평균 투자 비용은 2009년 연평균 3.0%에서 지난해 2.5%로 낮아졌다. 현대증권 오온수 연구원은 "수수료가 싼 온라인 펀드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정부에선 '펀드 슈퍼마켓'(증권사를 통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펀드를 구매할 수 있는 판매 방식)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펀드 수수료는 계속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