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건설이 벼랑 끝으로 몰렸다. 외부 자금 유치를 위해 지난해에만 4차례나 시도했던 매각 작업이 모두 불발되는 사이 대규모 결손이 발생해 자본금을 모두 까먹을 상황에 처했다. 4월 1일까지 유상증자 등을 통해 자본잠식 해소 방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증시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채권단과 대주주인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정상화 방안을 두고 해법을 못 찾고 있어 최악의 경우 부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누적된 적자로 자본잠식

쌍용건설은 2004년 워크아웃 졸업 이후 7년간 꾸준히 흑자를 내던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지속된 경기 침체로 2011년 1300억원대 적자를 냈다.

지난해에는 상황이 더 나빠졌다. 2조원이던 PF 보증채무를 5000억원대로 줄이고 김석준 회장이 중단 위기에 놓인 해외 공사를 직접 발로 뛰며 정상화시키는 등 자구노력을 기울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유동성 확보를 위해 각종 자산을 할인 매각하면서 대손상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적자 폭을 키웠다. 3분기까지 누적 적자(순손실)만 1500억원에 육박했다. 오는 14일 작년 결산 실적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4분기에도 대규모 결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1200억원 정도 남아있던 자기자본을 모두 까먹은 것으로 추정된다.

BBB+이던 회사채 신용등급도 지난해 10월 BB+로 떨어진 데 이어 향후 자본잠식이 확정되면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그나마 현금이 돌던 해외 현장에서 선수금을 받지 못해 유동성 위기가 더 심각해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달 중 만기가 돌아오는 ABCP(자산담보부 기업어음) 1500억원과 하도급 업체 공사 대금 요청도 막기 어려워 부도가 현실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6년에 걸친 매각 불발, 손 놓은 대주주

쌍용건설 위기는 6년에 걸친 회사 매각 작업이 모두 무산된 게 결정적이다. 2002년 대주주(지분율 38.7%)가 된 캠코는 2007년부터 M&A를 추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2008년 이후 동국제강, 독일계 M+W그룹, 이랜드그룹 등이 차례로 인수에 나섰지만 모두 결렬됐다.

캠코는 주식 매각을 포기하고 지난해 말 외부 투자자에게 유상증자를 통해 경영권을 주는 방식으로 마지막 매각에 나섰다. 현재 홍콩계 사모펀드인 VVL 등 해외 투자자 2곳과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성사 가능성은 희박하다.

캠코가 '최고가 매각' 원칙에만 집착한 게 매각 불발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터져 시장이 나빠진 2008년에야 매각을 시작한 데다 추가적인 자금 지원이 없어 회사 가치가 계속 떨어졌다"고 말했다. 실제 동국제강이 2008년 제시한 쌍용건설 인수 가격은 주당 3만1000원이었지만 현재 주가는 10분의 1 이하다.

일각에서는 캠코의 매각 진정성을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캠코는 오는 22일까지 매각이 안 되면 쌍용건설 주식을 정부에 현물로 반납하면 그만이다.

쌍용건설이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최소 4000억원 이상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 금융권에서는 캠코가 주식을 감자(減資)하거나 추가 자금을 지원하면 채권단이 1500억원 정도를 출자전환한 뒤 외부 투자자를 유치해 2500억~3000억원대 유상증자를 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캠코는 "규정에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우건설의 경우 산업은행이 규정을 바꿔 가면서까지 인수와 정상화를 추진했다"면서 "정권 교체기에 컨트롤 타워가 없다 보니 문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누구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쌍용건설은 시공 능력 평가 13위로 그룹 계열의 건설사를 제외하면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국내외 현장만 130여곳이 넘고 협력 업체도 1400여개에 달한다.

부도 시 후폭풍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쌍용건설은 현재 19조원 규모의 해외 공사 입찰도 진행하고 있어 국가적 손실과 국내 건설사의 신인도 하락도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