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와 살인까지 부른 층간소음. 과거에도 층간소음은 여러 차례 사회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토해양부와 환경부가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소중한 목숨을 앗아가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층간소음에 대한 기준 마련에 나서기로 했지만, 현재로선 바닥 두께를 두껍게 하는 것 외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는 상황. 전문가들은 바닥 두께 외에 층고 기준을 높이거나 관련 소재 개발을 촉진할 수 있는 실질적인 층간소음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 바닥만 두꺼워지면 층간소음 해결될까

층간소음의 주무 부처 중 한 곳인 국토부는 설 연휴 발생한 살인 사건이 층간소음 때문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바닥 두께를 두껍게 하는 내용의 주택 건설 기준 개정안이 법제처 심의를 받고 있다고 11일 급하게 관련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현재 층간소음과 관련해선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을 때 바닥두께(벽식 210mm, 무량판 180mm, 기둥식 150mm) 기준과 바닥 충격음(경량 58db, 중량 50db) 기준 중 하나만 만족하면 된다.

하지만 앞으로는 두께와 충격음 기준을 둘 다 만족하게 해야 하고, 바닥 두께도 210mm로 기존보다 30mm가량 두꺼워지도록 건설기준이 강화된다.

조선일보 DB

층간소음 문제는 이미 수년 전부터 문제가 됐지만, 주무부처인 국토부와 환경부는 2004년 바닥 기준을 처음으로 마련한 이후 8년간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못했다.

환경부의 경우 생활 소음의 갈등이 커지자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등을 개설하고 소음 관리에 나서기도 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이번에 국토부의 개정안 역시 빨라야 내년 3월부터 지어지는 아파트를 대상으로 적용될 예정이라 기존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바닥만 두껍게 한다고 층간소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한다.

바닥이 두꺼워지면 경량 충격음(돌 등 딱딱한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 소음)은 크게 줄일 수 있지만, 층간 소음의 원인 중 하나인 중량 충격음(아이들 발걸음 소리 등)은 잡을 수 없다.

바닥이 두꺼워지면 기둥과 벽도 모두 두꺼워지는 것도 문제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고 건축비는 상승하게 된다. 게다가 건물의 하중 자체가 무거워지기 때문에 고층 건물을 올리기에도 적합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 2004년 이전 아파트는 사실상 해결방법 없어

층간 소음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것은 바닥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던 당시에 지어진 아파트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상 2004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층간소음 대책이 전무한 아파트로 보면 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입주일자 기준으로 2004년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전국 총 625만1258가구다.

국토부 관계자는 “2004년 이전에 지어진 경우는 사실상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DB

2004년 이후 지어진 아파트라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4년 공동주택 층간 소음 고시안을 통해 주택건설업체들의 경량충격음의 기준을 마련, 입주자 분양 공고 때 반드시 표시하도록 했다. 이후 업체들은 건물 바닥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기준을 지키고 있다. 이를 통해 58db 이하의 충격 소음을 차단하고 4등급의 기준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1000가구 미만의 경우 공개하지 않아 확인이 힘든 상황이다. 업체별로는 1000가구가 넘는 경우에도 바닥 관련 등급을 명확히 표시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제도 운영상의 허점도 있다. 충북대학교 건축공학과 한찬훈 교수는 “표준 바닥구조를 사용하면 층간소음 시험을 사실상 면제받을 수 있지만, 정부가 정한 표준 바닥구조는 사실상 만족할만한 층간소음을 해결하지 못한다”며 “표준 바닥 구조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주무부처 없고 국토부·환경부 우왕좌왕

층간소음 문제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고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음에도 주무부처가 국토해양부와 환경부로 나뉘어 있어 어느 부처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특히 관련 규제가 시행령 규정이라 구속력이 약한 것도 한계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 기준은 국토부가 마련하지만, 관련 소음은 생활 소음이기 때문에 환경부에서 관리한다”며 “국토부와 환경부로 업무가 나뉘어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층간소음 관련 처벌 규정이 미약한 점도 문제다. 우리나라의 경우 층간소음을 처벌하기 위한 규정은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소리를 지나치게 크게 내 이웃을 시끄럽게 한 사람은 범칙금(가벼운 벌금)을 내도록 하는 게 전부다. 독일의 경우 연방질서 위반법에 따라 과태료를 최대 630만원까지 부과하고 공해 방지법에 따라 저녁 시간에 악기 등을 연주하지 못하게 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을 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찬훈 교수는 “현재는 시행령 등으로만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사들에 강제하기가 쉽지 않다”며 “법으로 강력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건설사들 "우리도 어려운 상황"

건설사들도 할 말은 있다. 바닥 두께가 두꺼워지면 그만큼 건설 공사 시공비가 많이 들고 이는 곧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건설사나 소비자나 모두 부담이란 얘기다.

현재 바닥 구조는 콘크리트, 층간소음재, 경량 콘크리트, 바닥 마감재 등을 포함한다. 층간 소음재가 일부 들어가긴 하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다. 층간 소음을 줄이기 위해 바닥이 두꺼워지면 가구당 200만원가량의 비용이 추가된다.

건설업체 관계자는 “다양한 층간 소음재가 개발돼 바닥 두께를 두껍게 하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며 “하지만 결국 비용이 문제”고 말했다.

층고를 높이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단독주택은 2층 집이라도 층간 소음이 아파트보다 확연히 적다. 천장이 3m 이상으로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적용하기 쉽지 않다. 층고를 높일 경우 정해진 높이 이하에서 건설해야 하기 때문에 예정된 층수보다 낮게 지어야 한다. 사업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고급 소음재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 힘든 점도 문제다.

한 업체 관계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고급 소음재를 개발하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는 적용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며 “관련 기술 개발이 미진한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