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 NHN COO

"학생들이 좋은 논문을 쓰고 제때 졸업하려면 일단 좋은 교수의 지도가 필요하더라. 때로는 '하드 트레이닝(hard training)'을 위해 도전적인 과제도 해봐야 하고….경영의 이치도 다르지 않다고 봐."

컴퓨터공학도로 정보 검색의 매력에 빠져들었던 대학원 시절, 그는 외국 논문들을 닥치는 대로 뒤지며 문서 산더미 속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는 방법론을 섭렵했다. 때로는 좌절을, 때로는 한줄기 빛을 찾아내는 카타르시스를 맛 봤다. 강단에선 좋은 결과를 내고 졸업하거나, 방황을 하다 학위를 못따고 학교를 떠난 제자들을 봤다. 성과를 내거나 혹은 방황하는 임직원을 보면 대학원 동기나 제자들과 오버랩되기도 한다.

출발은 학문이었고 교수로도 수년을 보냈지만, 벤처 기업가가 된 이준호 NHN COO(최고운영책임자,48). 국내 검색 기술의 권위자인, 아주 가끔 학교 시절을 꺼내는 이 박사가 이번엔 게임 분야로 인생의 행로를 바꾼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 NHN의 향후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

◆ 예고된 수순 …"두 개의 태양은 없다"

6일 발표된 '벤처신화' NHN의 전면적인 기업분할이 단연 화제다.
NHN이 포털(NHN), 게임(한게임),모바일(캠프),메신저(라인플러스) 등 4개 회사로 쪼개진다. '인터넷 공룡 NHN, 이제 기업 분할로 승부수' 'NHN,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합병에서 한게임 분사까지''NHN 4분기 깜짝실적시장관심은 회사분할에' 등등 분석과 전망도 쏟아지고 있다.

수많은 해석에도 NHN에 정통한 사람들은 '지배구조'라는 키워드를 보지 못하면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번 기업분할은 화려했던 NHN 2기를 이끌어왔던 사령탑인 이해진 CSO(최고전략책임자), 이준호 COO(최고운영책임자)가 각각 독립된 길로 첫발을 내디딘 것으로 보면 된다는 것이다. 기업 분할 후 이해진 CSO가 NHN을, 이준호 COO가 분할하는 한게임을 각각 맡게 된다.

기업 분할 결정을 바라보는 NHN 내부 직원들은 담담하다. '하늘 아래 두 태양이 있을 수 없지 않으냐'고 말하며 예고된 수순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마디로 이해진 CSO와 이준호 COO의 '합의되고 숙고된 결별식'이라는 것.

두 사람의 불협화음 등은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고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기업을 운영하는 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분율이다. 이 CSO의 NHN 지분율은 4.64%, 이 COO 지분율은 3.74%. 지분율만 보면, 최대 주주인 두 사람 모두 확고한 경영권을 갖고 있다고 평가하기엔 낮은 편(국민연금 9.25% 보유). 두 사람의 지분율 차이도 크지 않다.

사령탑은 공룡이 된 NHN 조직이 더 커지기 전에 지배구조에 손을 댔다. NHN 관계자는 "대주주 지분이 너무 낮아 지주회사 전환이 어려워 기업을 쪼개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명분도 있다. NHN도 모바일 시대에 맞춘 효율적이고 발 빠른 의사 결정시스템이 필요하다. 작은 조직이 더 민첩하다.

네이버컴과 한게임의 합병으로 탄생한 NHN은 1기(이해진, 김범수 체제)에서 2기(이해진, 이준호 체제)를 거쳐 이제 3기(이해진 단독 체제)로 넘어가고 있다. 주주총회에서 이런 안이 통과되면, 한게임은 NHN과 완전히 결별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NHN이 지분을 100% 소유하는 다른 자회사와 달리 한게임은 인적분할돼 독립법인이 되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기업 분할은 네이버컴과 한게임이 합병한 지 13년 만에 다시 네이버컴과 한게임으로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 NHN의 기술 근간을 설계하고 분리되는 한게임을 맡아

이준호 COO가 NHN에 합류한 스토리는 10여년 세월이 흘렀지만, 승부사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 흥미롭다. 그가 개발한 검색 엔진으로 첫 인연을 맺은 회사는 네이버가 아니라 엠파스였다.

1999년 엠파스 검색 광고(왼쪽) 2000년 네이버 검색 광고. 이준호 COO는 당시 두 회사의 검색 엔진을 개발했다

1999년 박석봉 엠파스 설립자와 이준호 당시 숭실대 컴퓨터학부 교수가 의기투합해 만든 엠파스의 자연어 검색은 포털 지존 야후를 위협하며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정작 검색 솔루션의 가능성을 알아본 사람은 박 대표가 아니라 엠파스 선전에 충격을 받은 이해진 당시 네이버컴 사장이었다. 이 사장은 당시 현금 100억원 중 40억원을 쏟아붓는 베팅으로 이준호 교수의 서치솔루션 설립과 운영을 도왔다. 2000년 네이버컴과 서치솔루션은 합병한다.

이 COO가 NHN 기술의 근간을 만든 스토리는 또 있다. 2006년 그가 NHN CTO를 맡던 시절 이야기다. 그는 한국IBM과 맺은 10년 IT 아웃소싱 계약을 돌연 파기했다. 상당한 규모의 위약금도 물었다. NHN은 인터넷 서비스에 집중하기 위해 10년 동안 서버, 네트워크, 보안 등 IT 인프라 서비스를 한국IBM에 맡길 계획이었는데, 이를 틀어버린 것이다. 당시 한국IBM 고위임원은 "한국IBM이 자랑해 온 최대 계약이 깨진 데에는 구글의 부상을 눈여겨본 CTO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COO는 "인터넷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인프라 기술을 남에게 의존하고는 핵심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구글을 보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후 NHN은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업체인 큐브리드를 인수하는 등 IT 기반 기술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된다.
 
물론 이해진-이준호 두 사람이 만든 네이버 검색 철학과 전략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포털은 방문자가 다른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관문 역할을 해야 하는 데, 네이버 방문자는 네이버에만 머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웹 생태계를 키우지 못했다는 비판에도 이해진-이준호 NHN 2기의 성적은 화려하기만 하다. 한국 네티즌 문화를 분석해 내놓은 정교한 서비스와 핵심 기술 확보라는 양면 전략을 구사한 NHN은 2004년 국내 포털 시장 1위에 오른 후 10년 가까이 왕좌를 놓치지 않았다. 
 
◆'한게임 의장' 이준호 호는 어디로

이번 의사결정이 합의되고 숙고됐으며 예상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데는 이 COO의 역할 때문이다. 최근 2년 동안 한게임 관련 주요 의사결정 대부분을 이 COO가 해왔다. 한게임이 국내 게임업계에서 최초로 스마트폰 게임 전문개발사(오렌지크루) 만든 것도 그의 결정이다. NHN 게임부문 대표로 이은상 전 아이덴티티게임즈 대표를 영입하는 데 공을 들인 사람도 그였다. 사실상 이 COO가 NHN 게임사업부문을 총괄해왔다.

숭실대 교수 출신인 이준호 COO는 2003년 이 학교 발전 기금 10억원을 내놓기도 했다.

이 COO는 교수 출신 벤처사업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2008년까지는 숭실대 교수 직함도 있었다. 그렇다고 ‘상아탑’에서 연구만 매진하는 전형적인 교수 스타일은 아니다. 작지 않은 키에 쾌활한 목소리엔 에너지가 있다. 신중한 태도로 의중을 잘 드러내 않는 이해진 CSO와 달리 한번 믿으면 맡기는 스타일이다.

'한게임을 둘러싼 상황이 좋지 않다' '게임을 모르는 데 수장 역할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이 COO는 "오히려 절호의 기회"라고 말한다.

앞으로 그가 한게임 의장으로서 던질 첫 번째 승부수는 모바일이다.
"그동안 한게임 성적은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드디어 '찬스'가 왔다. 세상이 또 한 번 크게 바뀌고 있다. 모바일 세상이 온 것이다."

그는 한게임이 오랫동안 플래시 기반 가벼운 게임(캐주얼 게임)을 만들어 온 역량을 믿는다. 캐주얼 게임은 모바일 코드와 잘 맞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잘 나가는 카카오톡 게임 만든 사람 중에는 한게임 출신이 꽤 있다. 국민 게임 '애니팡'을 만든 이정웅 선데이토즈 대표도 한게임 출신이다.

이 COO는 바둑은 곧잘 즐기지만, 여느 공대생처럼 게임을 즐기지는 않았다고 고백한다. 지난 2년 동안 한게임 사업을 챙겨온 경험에 그가 더하자고 하는 것은 '과학'이다. 한게임 분사 결정이 나고 나서 그가 제일 먼저 만든 것은 게임과학연구실이었다. 보통 온라인 게임을 기획하고 설계할 때 기획자의 감(感)을 믿는 경우가 많은 데,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 게임의 흥행률을 높여보겠다는 것이다. 한게임이 만든 스마트폰 게임인 '야구9단'은 네이버 검색에서 썼던 알고리듬을 적용해 매출을 정확히 13% 높였다.

"승률이 10%, 20%인 게임 아이템 가격은 각각 얼마로 해야 할까요. 그런 연구를 게임과학연구실에서 합니다."

분할하는 한게임은 모바일 사업에 역점을 둘 전망이다. 사진은 한게임 스마트폰 게임인 '야구9단' 광고.

현재 대한민국 게임 산업은 시계(視界) 제로다. 10년 동안 시장은 급성장했지만, 중국 게임업체의 부상과 각종 규제로 비틀거리고 있다. 한게임은 고스톱, 포커 등 웹 보드 게임으로 연간 수 천억원씩 벌어들였지만, '왕중의 왕'으로 성장한 넥슨에는 범접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정부 규제로 웹보드 게임 매출도 줄어들 전망이고 다른 온라인 게임으로는 재미도 못 봤다.

'이준호 호(號)' 한게임이 지속적인 성장 토대를 만들고 '포털' NHN이 이루지 못한 해외 진출까지 이뤄낼까. 그런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이준호 COO를 중심으로 이은상 한게임 부문 대표, 우상준 한게임 스포츠게임사업부장, 정우진 게임사업센터장 등 이준호 사단의 행보를 지켜볼 일이다.

“게임 시장은 검색 시장보다 더 큽니다. 결국 비즈니스는 연말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보여주면 됩니다.” 이준호 NHN COO의 각오를 들으면, 이제 확실히 교수라기보다 사업가, 경영자임에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