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자금 수백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31일 오후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날 최 회장은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 됐다.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 회장이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SK그룹은 물론 재계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징역 4년을 구형할 때만 해도 "선고공판에서 실형 대신 집행유예로 선처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경제 민주화'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재벌 총수에 대한 엄격한 판결이 잇따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3·5룰' 깨져

최태원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는 그동안 암묵적 관행처럼 여겨져 왔던 '3·5룰'을 완전히 깼다는 데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법원은 재벌 총수에 대한 재판에서 대부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해 '정찰제 판결'이라는 비아냥까지 받아 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2009년 9월 삼성특검에서 배임 및 조세 포탈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비자금 조성 및 횡령으로 재판을 받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역시 2008년 6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받아 실형을 피했다. 앞서 최태원 회장 역시 2008년 5월 1조5000억원대 SK글로벌 분식회계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석달 만에 광복절 특사로 사면됐다.

그러나 지난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법정 구속되면서 이러한 공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번 최태원 회장에 대한 실형 선고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평가다. 법원은 지난해 2월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에게 징역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바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경제민주화 논의가 사법부의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는데,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31일 오후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들어오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모습.

◆ 경제민주화 신호탄…재계 충격

재계는 갑자기 엄격해진 법원의 잣대를 지난 대선 정국을 요동치게 했던 경제 민주화 바람 때문으로 분석한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정치권은 경제민주화 법안을 내놓으며 재벌 개혁을 강조했고, 선거 후에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역시 '대통령 사면권 제한'을 공약해 횡령 등 기업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들은 중형(重刑)으로 엄벌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31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과 배임 혐의로 기소된 최태원 SK회장이 징역 4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되자 서린동 SK본사도 충격에 빠졌다. 소식을 들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하는 등 혼란스러워했다. 이덕훈기자 leedh@chosun.com


따라서 앞으로 있을 최태원 회장의 2심이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항소심 역시 법원의 엄격한 판단이 뒤따를 전망이다.

무죄 판결을 받거나, 적어도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SK그룹은 실형 선고 이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검찰이 최 회장의 혐의를 강도 높게 비난하고도 4년만을 구형하자 SK측은 내심 선처를 기대했다.

SK그룹 관계자는 "1심 판결이 이렇게 나왔지만 향후 (2심으로 가면) 달라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말을 아낀 채 법정을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