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헤드헌팅 회사인 하이드릭&스트러글스 한국법인의 김재호 대표는 최근 임원회의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여성 임원급의 인력 풀을 늘려라"고 지시했다. 그는 "민간기업에서 수요가 느는 데다 최근 국회에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여성 임원 비율을 30%까지 확대하는 법안이 제출된 이후 관련 문의가 폭증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 들어오는 이력서 중 여성의 비율은 10~20% 수준. 남성 이력서는 수북하게 사무실에 쌓여 있지만, 실제 스카우트로 연결되는 비율은 여성이 훨씬 더 높다.

'여성 임원 찾아달라' 아우성

'여성 임원 쟁탈전'이 민간·정부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후보의 당선으로 첫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리고, 기업마다 여성 임원을 중용하려는 인사 정책이 빚어낸 현상이다. 최근 감성경영을 표방하며 기업 활동에 좀 더 섬세한 터치가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도 반영하고 있다.

최근 각 기업마다‘여성 임원 구하기’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주요 대기업의 대표적인 여성 임원. 왼쪽부터 삼성전자가 세계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는 TV사업부에서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송영란 상무, 대기업에서 보기 드문 회계 담당 여성 임원인 LG유플러스 여명희 상무, 코오롱 그룹 첫 여성 CEO인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이수영 부사장, 한화그룹 제조계열사의 첫 여성 임원인 한화케미칼 김경은 상무보.

헤드헨팅업체 유앤파트너즈 유순신 대표는 "예전엔 여성을 많이 다루는 특정 보직·회사에서 여성 임원을 찾았다"며 "지금은 30대 그룹 대부분에서 인사·홍보·마케팅 등 부서와 회사를 가리지 않고 여성 인재 찾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 인재에 대한 수요는 증가했지만 이에 걸맞은 인재는 제한돼 있는 실정이다. 10대 그룹 안에 드는 인사담당 임원은 "회장님 지시 때문에 여성 인재를 찾고 있는데, 커리어를 갖춘 여성 인력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자체 승진도 활발하다. 연말연시 대기업 임원 인사에서는 창립 50년 만에 첫 여성 최고경영자(코오롱), 첫 여성 백화점장(현대백화점), 첫 여성 부사장(SK), 공채 출신 첫 여성 전무(LG) 등이 탄생했다. 현대차 그룹의 경우 인력채용팀에 처음으로 여성 팀장이 기용됐다. 보통 고참 남성 차장이 팀장이었는데, 차장 1년차인 여성이 이 보직을 꿰찼다. 재계 관계자는 "여성의 장점을 살려 보다 섬세하게 인사를 하고, 여성 인력 채용을 더 활발히 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5년 내 여성 임원 폭발적 늘 것

요즘 여성 임원들의 주류는 이른바 '육여사'들. 60년대생, 여성, 40대를 일컫는 말이다. 100대 기업의 경우 여성 임원 비율은 전체 임원 6000여명 중 1%대에 불과하다. 업계는 조만간 1970년대생 여성 임원들이 쏟아져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일어난다는 얘기다.

삼성그룹은 1992년 여성 공채를 최초로 실시하는 등 여성 인력 채용을 크게 늘렸다. 보통 사원에서 부장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18~21년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현 부장급에서 임원으로 올라서는 규모가 크게 늘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해 4월 여성 임원 비율을 현재 1.4%에서 2020년 1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 임원이 1000명을 넘으니 앞으로 수년간 100여명 이상의 여성 임원이 내부 승진이나 영입을 통해 탄생한다는 얘기다.

여성 임원 배출이 에베레스트 등정과 비슷한 궤적을 그릴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해발 8848m의 에베레스트산은 1953년 뉴질랜드 에드먼드 힐러리경(卿)이 처음 정복했다. 이후 연간 평균 2~3명이 등정에 성공했을 뿐이다.

하지만 2004년부터 한 해 300명이 넘게 등정에 성공하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났다. 예전엔 베이스캠프가 해발 2000m에 있었지만 2004년 이후엔 해발 6000m로 옮겼다. 인프라가 좋아지다 보니 정상 정복이 좀 더 수월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