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원 JP모간코리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부동산 시장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 주택 가격의 하락은 여전히 수도권에만 집중되고 있지만, 주택 거래량과 미분양 물량을 볼 때 비(非)수도권 주택 시장도 안심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흥미로운 것은 주택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전세 가격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택 가격 하락과 전세 가격 상승 모두 민간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특히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의 비중이 54% 정도로 미국 (65.2%)이나 일본(78.5%·2인이상 가구 기준)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서울 지역은 41%에 불과함을 고려한다면, 주택 가격 하락도 문제이지만 전세 가격의 지속적 상승이야말로 향후 민간 소비 전망을 암울하게 하는 주된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전세 가격 상승

전세 가격이 오르면 세입자는 소득이 줄어들지만 집주인(임대자)은 소득이 늘어나므로 전체 소비에는 별 영향이 없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따져 보면 그렇지 않다. 일반적으로 세입자의 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 감소 효과가 집주인의 소득 증가에 따른 소비 증가 효과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는 세입자의 소득이나 자산이 임대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으며, 소득이 적은 층일수록 소득이 변동할 경우 소비 변동의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데 기인한다. 또한 전세 가격의 경우 거액의 보증금을 단시간에 준비해야 하기에 가용(可用) 소득에 대한 제약의 정도가 상당히 크다는 문제가 있다. 실제로 많은 실증 연구들이 전세 가격, 월세 가격, 주택 가격 3가지 중에서 한국 소비자의 지출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전세 가격임을 보여 주고 있다.

◇전세 가격 상승 원인은 비관론

요즘처럼 주택 가격이 하락함에도 불구하고 전세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한국에서는 흔치 않은 경우다. 그렇다면 전세 가격이 계속 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등 다른 여러 나라의 경우를 보면 주택 가격의 하락과 임대료 인상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경기가 나빠지고 가계 소득이 줄어들어 집을 구입할 여력(housing affordability)이 감소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향후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주택 구입을 미루는 경우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위 두 요인 중 주택 구입 여력의 악화보다는 향후 가격 하락에 대한 기대가 전세 가격 하락에 좀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왜냐하면 통상적으로 주택 구입 여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소득 상황인데, 어떤 자료를 봐도 지난 2년여간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소득이 감소했다는 근거를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낮은 경제 성장률에도 불구하고 고용 자체는 꾸준히 증가했고, 가구당 명목 소득 또한 5~6% 정도 증가했다. 물론 늘어나는 가계부채 부담이 가용 소득을 제한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2012년의 경우 금리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대출 만기가 장기화됨에 따라 부채 상환이 이전에 비해 크게 악화되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최근 주택 가격이 하락함에도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은, 향후 주택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할 것이라는 소위 부동산 비관론(real estate pessi mism)의 팽배가 주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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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비관론은 과장됐다

그렇다면 주택 시장 비관론은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일까? 한국 주택 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한국의 주택 시장이 거품 상황이기에 결국 그 거품은 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구 고령화로 인해 주택 수요가 점차 감소해서 1990년대 비슷한 과정을 겪었던 일본과 같이 장기 불황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일단, 한국 주택 시장이 거품이란 주장부터 살펴보자. 통상적으로 주택 시장에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은 주택 가격이 너무 높거나 주택의 공급이 과도할 때를 지칭한다.

흔히들 사용하는 자료는 '소득 대비 주택 가격'이다. 우리나라 중위(中位) 주택 가격, 즉 주택 가격이 가장 높은 것부터 낮은 순으로 줄을 세울 때 가장 중간에 해당하는 주택의 가격은 소득의 4배 정도이다. 서울 지역만 따지면 8배 정도이다.

이는 최근 주택 시장 붕괴를 경험한 미국보다는 높지만, 비슷한 인구 밀도를 갖고 있는 아시아 지역과 비교해서는 결코 높다 할 수 없다. 중국의 경우 중위 주택 가격이 소득의 8배, 베이징은 17배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도 서울보다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0년 이후 한국의 주택 가격 상승률을 추적해 보면 더욱 흥미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소득과 물가 상승률에 비해 주택 가격의 상승이 훨씬 완만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만일 현 시점에서 우리나라 주택 가격이 거품이라면 지난 20년간 거품이 아니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주택 시장이 공급 과잉인가에 대한 판단은 보다 간단하다. 가구와 주택의 개수를 단순 비교하는 주택 보급률(housing penetration ratio)을 보면, 2011년 말 기준으로 전국 평균이 102.3%에 불과하다. 즉 100가구당 주택 수가 102.3개란 의미다. 특히 최근 주택 가격 하락이 집중된 서울의 경우는 100가구당 주택 수가 97개여서 주택 공급 과잉과는 거리가 있다 할 수 있겠다. 반면 1990년도에 거품 붕괴를 경험했던 일본의 경우는 주택 보급률이 115% 이상을 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자가 주택 소유 비중(home owne rship)은 일본과 더욱 차이가 난다.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국의 자가 주거 비중은 전국 평균 54%, 서울지역 41%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2008년 미국이나 1990년 일본이 65~70% 수준이었던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인구 고령화가 주택 가격 하락의 충분조건 아니다

인구 고령화를 근거로 한 주택 시장 비관론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한국 인구 구조 추정이 여전히 유동적임을 유의해야 한다.

지난 2005년 이후 출산율 둔화가 주춤하고 반등의 조짐을 보인다든지, 이민자 유입이 증가하고 유출은 감소한다든지 하는 점은, 향후 고령화의 진행 정도나 인구가 정점에 이르는 시점을 늦추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구 고령화에도 불구하고주택 시장이 침체에 빠지지 않은 국가가 많다는 점 또한 유념할 필요가 있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가 대표적이다. 즉, 인구 고령화가 주택 가격 하락의 필요조건은 될지언정 결코 충분요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 주택 시장의 운명을 단순히 인구 구조가 비슷하다는 점을 들어 일본 주택 시장과 동일시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본다. 부동산 호황기에 주택 가격이 얼마나 많이 올랐나 하는 정도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대출 규제의 정도와 은행의 자산 건전성, 그리고 환율의 역할 등 너무나 많은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시중에 팽배해 있는 부동산 비관론은 상당 부분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비관론으로 인해 잠재적 주택 수요자가 주택 구입을 미루고 전세 시장으로 진입함으로써 전세 가격은 상승하고 주택 가격은 하락하고 있으며, 나아가 소비 둔화의 골을 깊게 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결국 소비 둔화, 전세 가격 급등, 그리고 부동산 시장 침체의 문제는 모두 부동산 비관론이라는 현상에 기인한 문제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