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신약 하나가 연간 수조원을 벌어들이는 제약·바이오산업. 전자와 자동차,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에서 이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우리나라지만, 아직 제약·바이오산업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하다. 제약·바이오 분야를 통틀어 1위 기업인 동아제약의 매출액이 아직 1조원도 채 되지 않는 상황. 전 세계적으로 고령화가 가속화하고 중국이나 인도 등 신흥국의 시장이 급성장하며 바이오 시장은 놓칠 수 없는 시장이 됐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은 지금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할까? 학계와 연구계·산업계·정부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에게 한국이 나아갈 길을 물었다.

우리나라 제약·바이오 산업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12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 각계 전문가가 모였다. 왼쪽부터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 서영거 대한약학회장, 안미정 지경부 R&D 전략기획단 융합신산업 MD, 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의 현재는?

이관순 한미약품 사장=대중이 바라보는 것과 업계가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 있다. 결국 기술 수준이 세계 수준에 얼마나 근접했는가를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이제 일본을 거의 따라잡은 정도가 됐다. 글로벌 시장에서 돈을 벌어들일 재료들이 막 생겼고, 실제 돈을 벌어오기 시작했다. 발기부전치료제 '비아그라'를 필름형으로 만들어 오리지널 제조사인 화이자에 납품하는 것을 봐라. 기존 약들을 합쳐 만든 복합제도 만들어 시장을 뚫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가 생각하지 못한 것을 만들어서 그들의 판매망을 이용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2~3년 안에는 글로벌 신약도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서영거 대한약학회장=우리나라는 기반 기술이 튼튼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직 최종 제품이 나오지 않았을 뿐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일등 산업이 될 잠재력이 있다는 의미다. 바이오가 국가 주요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었는데, 정부와 대기업이 기존 시장 규모를 기준으로 판단했고, 그 결과 투자가 늦어져 발전이 더딘 것이 아쉽다.

안미정 지경부 R&D 전략기획단 융합신산업 MD=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연평균 6.6% 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11% 성장 중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1.6%밖에 안 된다. 특히 고부가가치 제품이 적다는 약점이 있다. 줄기세포 등 나중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술이 잠재해 있어 희망도 있다.

―제약·바이오산업이 왜 중요한가.

김성수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고령화가 가속화하는 것과 신흥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은 다 아는 얘기다. 휴대폰에서 독보적이던 노키아가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는 IT산업이 5년 뒤를 예측하기 어려운 산업이라는 의미다. 이런 산업에 국가가 매달려 있다는 것은 미래가 불안하다는 말과 같다. 또 대부분의 산업이 버는 돈의 상당액을 외국에 로열티, 부품 값 등으로 지급한다. 하지만 바이오는 부침(浮沈)이 크지 않다. 똑똑한 신약은 특허 기간 내내 막대한 돈을 독보적으로 벌어들인다. 게다가 버는 것은 모두 우리 것이 된다. 인력이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고용 창출 효과가 어느 산업보다 크다는 점도 중요하다.

서영거=바이오를 방위산업으로 생각해야 한다. 싫건 좋건 기본적으로 잘해야 하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의약품을 스스로 만들 수 없다면 국민 건강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여러 아시아 국가의 제약산업이 다국적 제약사의 공세로 무너지면서 이들은 외국에서 의약품 공급을 끊으면 약을 쓰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1 이관순 KAIST 이학박사, 한미약품 중앙연구소장, 한미약품 대표이사 사장 2 서영거 미국 피츠버그대 이학박사, 서울대 약대 학장, 대한약학회장 3 안미정 미국 시카고 러시 의대 이학박사, 특허청 환경화학심사팀장, 지식경제부 R&D 전략기획단 융합신산업 MD 4 김성수 KAIST 이학박사, 과학기술부 생명해양심의관(국장급), 한국화학연구원 책임연구원

―바이오 강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안미정=미국은 R&D 중 R(연구)은 아웃소싱을 많이 하고 D(개발)는 직접 하는 형태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제넨텍 같은 바이오 벤처 출신 기업들이 이런 방법을 쓰고 있다. 특히 아웃소싱의 범위를 전 세계로 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기초연구에 강점이 있다면 시장에서 확실히 원하는 제품을 찾아서 연구하는 것도 좋은 전략이 될 것 같다.

김성수=의사들이 바이오산업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 지금까지 바이오 분야에서 신약 개발을 담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화학이나 생물 전공자였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유능한 의학박사들이 바이오 벤처에도 상당히 많이 들어가 있다. 의사가 신약 개발에 참여했을 때 얻는 시너지는 매우 크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가장 똑똑한 학생들이 의대에 몰려 있다. 이들을 산업으로 끌어올 통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관순=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시장으로 가야 글로벌 제약사가 된다고 하는 생각도 바꿔야 한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아시아 시장이 더 빠르게 성장 중이다. 이런 곳으로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중국만 봐도 중국용 제품을 따로 개발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정도로 시장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