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익히는 데만 2년 걸렸어요.”

지난 11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뇌병변1급 장애인 문애림(33)씨가 한 말이다. 문 씨는 “힘 조절이 힘든 중증 장애인의 경우 버튼이 잘못 눌러져 다른 데로 전화가 걸리거나 스마트폰이 초기화된 경우도 있고, 음성 인식 기능도 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뇌병변2급 장애인 이기호(52)씨도 “오른손이 많이 불편한데, 지금 가진 스마트기기로 글을 쓰기란 어렵다"고 했다. 이들 모두 ‘스마트폰 외에 장애인용 스마트기기를 사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인류의 혁신이라고 까지 말하는 스마트기기. 하지만 스마트 기술로 ‘장애’라는 불편함을 넘기엔 여전히 열악한 현실이다. 스마트기기와 애플리케이션이 장애인의 불편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는데다, 장애인용 스마트기기는 가격대가 높아 보급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 저시력 장애가 있는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37)는 “시각장애 학생들 5명 중 4명은 애플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다"며 “안드로이드용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애플 운영체제 iOS의 보이스오버(텍스트를 소리로 읽어내는 기능)격인 안드로이드의 토크백(TalkBack) 기능은 시스템 오류가 잦은 데다 인터넷 웹 브라우저상에서는 거의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 씨는 직접 갤럭시 넥서스와 아이폰을 비교해 보여주며 “안드로이드 체제는 iOS에 비해 접근성 지원이 정교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아이폰의 경우 초기화 상태에서도 음성 지원을 통해 금방 아이콘 및 검색기능을 찾을 수 있었던 반면, 갤럭시 넥서스는 휴대폰 설정 기능조차 찾기 어렵고 음성 변환 기능을 찾기까지 몇 단계를 거쳐야 했다.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접근성 문제도 심각했다. 음성 변환 기능이나 터치 인터페이스 기술이 잘 돼 있는 스마트기기를 소지하고 있어도, 앱 개발자가 장애인들의 이용을 고려하지 않고 제작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의 앱 이용이 어려운 것이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이은복 학생(17)의 경우 피아니스트가 꿈이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손쉬운 스마트폰 음악 듣기조차 어려웠다. 이은복 군과 함께 음성 변환 기능을 통해 온라인음악서비스 멜론 앱을 사용해봤다. 손으로 ‘멜론 차트’ 아이콘을 터치하자 ‘멜론 차트’가 아닌 “비티엔(btn~)”이라고 하는 알 수 없는 소리로 읽혔다. 개발자가 부여한 파일명인 듯했다. 이은복 군은 “상황이 이러니 멜론 앱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다"며 “어쩔 수 없이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

이처럼 응용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 장애인의 접근성을 섬세하게 고려해 지원하지 않으면, 장애인들은 이용 자체가 어렵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9월 장애인이나 고령자도 모바일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앱 개발 시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담은 안내서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접근성 지침’을 만들어 이를 따르도록 했지만, 이 지침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셈이다.

시각장애인들은 트위터와 카카오톡, 벅스뮤직, 방송사 라디오 애플리케이션은 앱 접근성이 우수한 반면 공공기관이나 유명 업체가 아닌 제3자가 개발한 대다수의 앱은 장애인들을 위한 접근성 지원조차 안 돼 있어 이용이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석우 카카오 주식회사 공동대표는 “앱 제작 과정에서 장애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비용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가 하는 가치의 문제"라며 “이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구현한 기능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뇌병변장애인들은 “스마트기기들이 장애의 유형이나 경중(輕重) 등을 반영해 보다 섬세하게 개발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찬홍 한빛맹학교 교사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은 “스마트기기를 통해 더 큰 세상과 소통하고, 재능을 키우고 싶어도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니까 뭔가 해보려는 의욕이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아이패드·갤럭시 탭·갤럭시노트 등 화면이 큰 스마트기기는 저시각 장애인들에게 편의를 주고 있었다. 화면이 크고 카메라 화질이 좋다 보니, 시각장애인용 독서확대기 대신 스마트기기의 카메라 줌 기능을 이용해 글이나 사진을 크게 키워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휴대성면에서도 시각장애인들은 스마트기기가 더 편리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비용 문제가 크다. 한국정보화진흥원 정보접근지원부 관계자는 “엄연히 스마트기기는 장애인만의 전용기기가 아니므로 정보통신접근 보조기기로 볼 수 없어 장애인들에게 지원해주기는 어렵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