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분기에 계획된 은행권의 부실채권 매각과정이 거의 다 끝났다. 되돌아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은 막대한 물량의 부실채권을 시장에다 내다팔았다. 담보부 부실채권만 계산해도 매각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난 3년간 매년 8조원 규모씩을 팔았다. 물론 원금 기준의 수치다. 이 것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모른다면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약 4~5배 늘어났다고 가늠하면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년에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상황이 녹록치가 않다. 은행권에 닥쳐올 부실채권 덩어리는 크게 네 가지다. 일부는 근래 들어 가시화되는 부분도 있고 일부는 오래 전부터 적기에 처리되지 못한 채 적체되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부실이다.

첫째는 아직도 잘 안 돌아가는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다. 은행권이 현재 들고 있는 부동산 PF는 30조원 가량 된다고 한다. 그래도 부단히 털어낸 결과 피크 때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이중 약 3조원 상당이 부실채권으로 분류되어 있다. 아직 장부에 남아있는 이유는 사업장의 계속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더 할인해서 팔자니 거북하고, 가격이 안 맞으니 시장에서는 소화가 안 된다.

이 정도로 인지된 부실 PF의 규모는 은행권이 충분히 안고 갈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뒤에 잠재된 부실PF가 문제다. 소위 요주의로 분류된 부동산PF가 약 7조원 상당에 이른다. 부동산 경기가 계속해 침체국면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애초에 세워놓은 PF 사업장의 사업계획은 더 틀어져 버린다. 전환의 모멘텀이 없는 한 요주의 분류에 머물고 있는 부동산 PF는 부실채권으로 경계를 넘어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은행권이 은근히 걱정하는 대목이다.

둘째로 서해안에서 남해안까지 중소형 조선소에 깔아놓은 대출채권과 RG(선수금환급보증)가 또 문제다. 이와 관련된 채권의 상당수를 은행권은 부실채권이 아닌 요주의 채권으로 분류해왔다. 부실채권으로 분류될 경우 선박의 발주처에게 보증한 금액을 그대로 물어줘야 한다.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같이 소위 트리거(trigger) 조항에 걸리면 보증서를 끊어준 금융기관이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기술적으로 피하면서 수습의 시간을 벌기 위해 채권단은 부득이 사적화의를 추진해 왔다. 부실채권으로 적극 분류할 이유가 없었다.

해운경기는 여전히 회복이 불투명하다. 국내 중소형 조선업은 이미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잃었다. 그 사이에 조선사가 수주한 선박들 중에서 차라리 추가자금을 더 투입해서 배를 인도하는 것이 선수금을 그대로 물어주는 것보다 손실폭이 적다고 판단되는 경우 채권단은 주채권은행을 중심으로 돈을 더 내서 배를 지어 넘겨줬다. 이렇게라도 처리할 수 있는 선박은 물량이 다 소진됐다. 남은 배들은 건조시 손실이 더 나는 것들 뿐이다. 더 이상 수주가 어려운지라 회사는 작업물량이 말랐다.

조선사와 개별선박의 관계는 마치 건설사와 개별 PF사업장과 유사한 구조다. 개별 선박의 입장에서 조선사는 하나의 플랫폼에 불과하다. 개별 선박의 채권단과 조선사의 채권단은 일치하지 않는다. 다 지어 배를 인도한 금융기관은 더 이상 조선사에 운영자금을 할애할 이유가 없다. 플랫폼을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둘씩 다 지어진 선박들이 떠나고 나면 채산성이 안 맞는 부실한 선박수주만 남게 된다. 이제는 다 털고 법원으로 달려가 빚잔치를 해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은행권도 조만간 요주의에서 부실채권으로 분류해야 하는 수순만 남았다.

셋째는 부동산경기 침체가 지속될 경우 초래될 또 다른 여파가 큰 걱정거리다. 바로 주택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인해 LTV(주택담보인정비율)가 한도를 넘어섰거나 그 언저리에 내몰려 있는 주택담보대출들이 그 장본인이다.

유수의 전문기관들은 주택가격이 저점을 확인하기까지 적어도 1~2년 가량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LTV가 깨진 대출자들은 LTV를 맞추기 위해서 주택담보대출 연장시 은행으로부터 일부 상환의 독촉을 받게 된다. 다른 소득재원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집을 줄이고 팔아서 여유분으로 해소를 해야 한다. 하지만 매각이 잘 안 된다. 주택가격이 더 하락할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지배하기에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동안 주택이란 중산층에겐 예금과 맞먹는 수준의 환금성이 보장되고 인플레에도 가치가 방어되는 주요한 투자자산이었다. 이런 믿음이 무너져버렸다. 거주수요가 있는 지역에서는 그래도 환금성이 있다고 믿어지는 전세의 가격만이 줄기차게 오르고 있다. 어떤 지역에서는 웃돈만 약간 보태면 아예 전셋집을 살 수도 있단다. 하지만 안 산다. 결국 집을 못 파는 대출자들로서는 원리금 상환을 위한 다른 재원이 없는 한 어쩔 수 없이 은행 앞으로 부실채권을 양산하게 된다.

넷째는 환율하락(원화절상)으로 인해 타격이 예상되는 수출 관련 중소기업들이다. 근래 들어 주요 수출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 원화만이 중국의 위안화와 같은 방향으로 통화가치의 절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영업이익 마진이 한계에 이른 중소기업들로서는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 상장사 이익의 절반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차지하는 판국이다. 글로벌기업들의 경쟁구조는 패러다임을 걸고 하는 모 아니면 도의 양상이다. 휴대폰의 기술사양이 확 바뀌거나 자동차의 대규모 리콜사태라도 일어나 명성이 훼손되면 국가경제 전체가 휘청거리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리스크 관리라는 매크로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그만큼 취약해진 경제구조다.

근래 들어 부실시장을 관찰하면 한 가지 드러나는 특징이 있다. 일련의 하청업체들이 수직라인을 형성하며 줄도산이 일어난다. 휴대폰의 사양이 바뀐다거나 또는 개발한 자동차의 주요부품이 거부되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부동산 PF의 부실은 건설업체와 그 밑의 하청업체들의 무더기 도산을 초래했다. 한 분야에서 일어난 일이다. 조선업체가 어려워지자 관련 부품업체들이 어려워졌다. 역시 특정분야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요즘에는 도산이 전반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분명 환율의 여파도 있다.

환율절상의 불리를 피하고자 획기적인 원가절감이 필요하면 대기업은 글로벌 아웃소싱을 찾아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 대신에 환율하락의 여파를 흡수하도록 마진구조와 단가의 조정을 요구받기라도 하면 견디기 어려운 하청업체들의 수는 더 늘어나고 만다. 중소업체들로서는 진퇴양난이다.

은행권은 보통 연말이 되면 부실채권비율의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물론 감독기관으로부터의 눈치도 있다. 하지만 은행권의 부실채권비율이 정상치보다 높다는 것은 해당국가의 경제가 충분히 정상화되지 않았다는 평가로 이어지고 시스템이 잘 안돌아간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그러면 해외채권 발행시 디스카운트를 당하는 불이익이 빚어진다. 그만큼 납세자인 국민들이 더 떠안는 부담이 된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로선 다른 할 일도 많겠지만 은행권에 적체된 또는 잠재된 부실부터 조속히 털어내게끔 방향을 잡는 일이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