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보면서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치매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서울 구로구에 사는 유현주(43)씨는 치매를 앓고 있는 홀어머니를 보살펴온 지난 5년을 '전쟁과도 같았던 시간'이라고 했다. 유씨의 어머니 지모(70)씨는 지난 2002년 노인성 우울증을 동반한 치매 진단을 받았다.

지씨의 치매 증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처음엔 길거리에 버려진 가방, 옷, 신발 등을 주워와 집안을 쓰레기장으로 만들더니 급기야 가족을 향해 가위나 칼을 들기도 했다. 잠시만 한눈을 팔면 집을 나가버렸고, 밤만 되면 자고 있던 가족을 깨우기 일쑤였다. 유씨는 "그런 엄마를 보고 매일같이 울었다"며 "사사건건 엄마 문제로 싸우면서 가족과도 말 한마디 안 하게 됐다"고 했다.

지씨가 요양원에 가길 거부하자 유씨는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남편과 함께 친정으로 들어갔다. 신혼이었지만 남편의 동의를 받아 아이도 갖지 않기로 했다. 매일 24시간을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그의 일상은 사라졌다. 유씨는 "가끔 너무 힘들 땐 엄마에게 다른 병이 더 생기기 전에 좋은 세상으로 가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고 말했다.

올 들어 우리나라 치매 환자 수는 53만명을 넘어섰지만, 치매 환자를 돌보는 부담은 여전히 대부분 가족 몫이다. 실제로 국가 지원 요양 시설 등의 도움을 받는 환자는 15만명이 채 안 된다. 치매 환자 가족들은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심리적 상처'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모(49)씨는 올 초 치매 증상을 보이는 아내를 위해 회사까지 그만뒀다. 그는 "아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면서 "이제 그간 저축해 둔 약간의 돈과 연금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는 다른 질환보다 진료·치료에 비용이 많이 드는 '비싼' 병이다. 2010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질환별 1인당 진료비'에 따르면 치매는 310만원으로, 당뇨(59만원)의 5배가 넘었다. 뇌혈관 질환(204만원)이나 심혈관 질환(132만원)보다도 훨씬 높았다. 지금도 치매 환자 가족의 상당수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급여 외에 매달 수십만원 이상씩 요양원이나 간병인에게 따로 지불하고 있다. 분당 서울대병원은 이런 비용을 포함한 '치매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이 2010년 8조7000억원에 달했고, 10년 뒤인 2020년 19조원, 2030년 39조원, 2050년 135조원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한 바 있다.

3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동 구로구치매지원센터에서 유현주(43)씨가 10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함께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유씨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남편의 동의를 얻어 아이를 갖지 않고 병수발을 들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치매 환자 가족이 겪는 '정신적·심리적 상처'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4년째 함께 사는 전모(33·회사원)씨는 "치료할 희망이 없는데도 가족 모두가 24시간 매달리다 보니 다들 스트레스를 받아 병이 나기 직전"이라며 "아버지를 보면 누군가 가슴을 콕콕 찌르는 것 같고, 때로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이 정신적 고통을 털어놓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턱없이 부족한 가운데 치매에 걸린 가족을 버리거나 살해하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올 1월에는 경기도 용인시에서 치매 걸린 아버지(79)를 5년간 모시던 40대 남성이 말다툼 끝에 아버지를 마구 폭행해 숨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른바 '간병 살인'이다.

대한치매학회가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치매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27명이 직장을 그만뒀고, 51명은 근로시간을 줄였다. 10명 중 8명이 직장 생활마저 타격을 입는 것이다. 한국치매가족협회 홈페이지에는 매주 끊이지 않고 치매 가족의 고민 글이 올라온다. 협회 측은 "치매 환자 가족의 상담 전화를 받아보면 심리적 스트레스 등으로 불면증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이가 상당수"라고 밝혔다.

[[천자토론] 치매, 개인의 짐인가? 사회의 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