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계의 염원이었던 장기 간접(펀드)투자 문화 정착의 꿈은 완전히 식은 것일까. 글로벌 위기가 발생한 2008년 코스피지수는 800까지 추락했다가 최근 1900선까지 회복했다. 그런데 2008년 140조원에 달했던 주식형 펀드 시장 규모는 현재 90조원 규모로 쪼그라들었다.

31일 출시 5년이 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사이트증권자투자신탁1호(인사이트 펀드)는 펀드 투자 붐과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사이트 펀드는 2007년 주식형 펀드 전성시대에 미래에셋 돌풍을 타고 한 달 만에 4조원이 넘는 자금을 모았다. 그러나 인사이트 출범과 동시에 세계 증시가 고꾸라지기 시작했고, 인사이트 펀드는 처음 며칠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플러스 수익률을 내지 못하고, 한때는 원금을 절반 넘게 까먹었다. 이른바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초대형 펀드가 '반 토막'의 비극을 맞자 펀드 붐도 급속히 식어 들었다. 인사이트의 실패는 과연 펀드라는 투자 상품 자체의 문제였을까.

펀드의 정석이 깨졌나 운용의 실패인가

보통 3년과 5년 정도에서 펀드의 장기 수익률을 판단하는데, 인사이트 펀드의 5년 수익률은 여전히 -26%다. 미래에셋 측은 '불운(不運)'이라고 말한다. 펀드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해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 실제로 해외주식형 펀드 5년 평균 수익률이 -37%에 달한다.

그러나 인사이트 펀드와 비슷한 '글로벌 자산 배분 펀드'와 비교해보면 반드시 불운만을 탓하기도 힘들다. 전 세계 증시가 급반등한 지난 2009년을 제외하고는 1위 펀드보다 배 이상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특히, 2008년, 2011년, 2012년엔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은 각각 -51.3%, -16.7, 0.04%를 기록, 글로벌 자산 배분 펀드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자산 배분이 안 됐다

전 세계 지역과 투자 대상에 상관없이 유망 상품에 투자하겠다는 계획과 달리 실제로는 중국 시장에 '몰빵(집중)' 투자했다는 것이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인사이트 펀드는 큰 손실을 본 뒤에도 중국 투자 비중을 줄이지 않아 2009년엔 중국 투자 비중이 80%에 달했다. 이것은 분산투자라는 대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다양한 주식, 채권, 부동산에 분산 투자할 경우 위기의 순간 오히려 위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제대로만 분산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았으리라는 것이다.

초기에 '거의 중국 펀드'였던 인사이트 펀드는 최근엔 '거의 미국 펀드'란 얘기가 나온다. 미국 투자 비중이 50%까지, 애플 비중이 10%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미국 증시와 애플이 올해 대단히 올랐지만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은 아직도 시원치 않다.

또 다른 투자 업계 관계자는 "몰빵식 투자는 미래에셋의 성장 스토리와 관계가 있다"면서 "미래에셋은 OCI, 두산, 현대중공업 등 몇몇 종목을 찍어 주가를 올리고 고수익을 내왔는데 상황이 바뀌어도 이런 투자 색깔은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세계 금융 위기는 예측할 수 없었더라도 빠르게 궤도를 수정하지 못한 것은 뼈아픈 실수로 기록되고 있다. 인사이트 펀드는 리먼 사태가 터지고 1년 후에도 중국 투자 비중을 80%까지 늘렸다.

이에 대해서는 '성공 스토리'를 가진 오너 박현주 회장이 정점인 미래에셋의 의사결정 시스템과 잦은 펀드 매니저의 교체 등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미래에셋에서 근무했던 관계자는 "박 회장이 '다음(넥스트)은 중국'이라고 했을 때, 다른 의견을 내고 합리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여건은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사이트 펀드를 실무적으로 설계한 초창기 인력은 대거 회사를 나갔다.

구재상 부회장 등 투자의 귀재로 불려왔던 운용역의 운용 능력이 전체 회사 역량으로 진화하지 못했고 당시만 해도 젊은 신생회사였던 미래에셋이 120조원으로 불어난 그룹 자산규모를 통제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박 회장은 올 1월 인사이트 펀드 투자 성과에 대한 사과 광고를 일간지에 냈다.

장기 투자는 왜 안 통하나

배당 등을 받으면서도 펀드 설정이 5년이 지난 시점에서 원금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의문이다. 장기 투자라는 투자 정석이 무너진 것이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금융 위기 이후엔 '묻어두기 투자(buy and hold)' 전략이 유효하냐는 논쟁이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한국투신운용 관계자는 "2000년대 들어 미국 주식시장이 10년 이상 옆걸음을 하고 큰 위기를 두 번이나 겪을 정도로 주가가 흔들려 자본시장의 본류인 미국에서부터 장기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데이비드 전 KDB산은자산운용 대표는 "일본식 불황과 같은 저(低)성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돼 장기 투자보다 정확한 주식 매매 시점을 잡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인사이트 펀드로 본 간접 투자의 교훈

투자자 입장에선 펀드도 손절매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얻게 됐다. 단기간에 큰 손실을 본 펀드는 회복이 어려운 것이 정설로 통한다. 50% 이상 하락한 펀드는 50%가 아닌 100% 이상 수익을 내야 본전을 되찾을 수 있다. 2007년 설정된 러시아, 중국, 베트남 등 해외 펀드들이 원금의 절반조차 건지지 못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둘째로 과거 수익률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운용사를 선택하는 것도 위험하다는 점을 기억해둘 만하다. 크지 않은 주식시장에 특정 펀드에 대량으로 자금이 들어올 경우 이 펀드가 사는 종목이 올라가게 된다. 펀드 내 비중을 유지하려 돈이 들어오면 같은 종목을 사게 되기 때문. 다만 반대로 돈이 빠져나갈 때는 오히려 평균 아래의 수익률이 나오게 된다. 좋은 성적이 운용사의 실력인지 돈의 힘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국 아무리 뛰어난 투자자라도 분산투자의 원칙은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분산투자를 할 수 있었던 인사이트펀드의 '몰빵' 투자는 한국 펀드 문화 전체에 뼈아픈 상처를 만들어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