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롯데칠성은 음료제품 10개의 출고 가격을 올렸다. 회사 측은 당시 "설탕·캔 같은 원자재값 상승 때문에 부득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이유를 밝히면서 동시에 "인상분을 3% 수준으로 최소화했다"고 생색을 냈다. 얼핏 보면 '더 올려야 하는데 덜 올려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줬다'는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상승률은 그렇지 않았다. 1950년 출시 이후 62년째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장수(長壽) 베스트셀러 '칠성사이다'와 국내 콜라 시장 점유율 2위인 '펩시콜라'의 인상 폭이 전체 인상률의 두 배가 넘는 7% 전후였기 때문이다. 가격이 인하돼 전체 인상률을 줄이는 데 기여한 '델몬트 스카시플러스'나 '데일리C비타민워터' 등은 시장 반응이 미미한 제품이다. 회사 1분기 보고서엔 "탄산음료의 경우, 소비심리 회복에 따라 소폭 성장을 보이고 있으나, 주스 음료는 매출이 정체돼 있다"고 적혀 있다.

소비자들은 '생활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아우성이지만 대형 식품업체들은 "평균 인상 폭으로 보면 그리 많이 오른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양측의 시각이 다른 배경엔 식품업계의 편법 가격 인상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착시 효과' 노린 비인기 제품가 인하

잘 팔리는 제품의 가격은 인상하고 상대적으로 덜 팔리는 제품의 가격은 낮추는, 이른바 '물타기'는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 폭이 크지 않다는 '착시 효과'를 주기 위해 식품업체가 단골로 사용하는 수법이다.

삼양식품은 올해 7월 '삼양라면' '수타면' 등 30여개 제품 가운데 가장 잘 팔리는 제품 6가지를 최고 10%까지 올렸다. 반면 나머지는 가격을 동결시켰다. 크라운도 '산도' '쿠크다스' '초코하임' 등 주력 제품만을 골라 가격을 올렸고, 농심은 연 매출 600억~700억원인 '새우깡'을 비롯해 '칩포테이토' '수미칩' 가격을 50~100원씩 인상하는 한편 상대적으로 매출 비중이 낮은 '콘스틱' '별따먹자' 가격은 60원씩 내렸다.

식품업계 관계자 A씨는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와 언론으로부터 비판을 피할 수 없는데, 비인기 제품 가격을 낮추는 것은 일종의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해 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용량 줄이며 20% 실제 인상 효과 노리기도

동서식품은 작년 원두커피 '맥스웰하우스 블루마운틴'을 400g에서 200g으로 절반 줄이며 가격은 1만9500원에서 1만2400원으로 내렸다. 100g당 가격으로 따지면 4875원에서 6200원으로 27%나 가격을 올린 셈이다.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대신 제품 용량을 줄여 결과적으로 비용을 절감하는 편법은 특히 제과업체가 자주 쓴다. 해태제과는 지난 2월 프로야구 시즌 개막에 맞춰 '홈런볼 카라멜맛'을 출시했다. 이 리뉴얼 제품 가격은 148g에 소비자가 4500원. 기존의 146g 제품은 대형마트에서 3200원, 편의점에서 4000원 수준에 판매됐다. 용량을 2g 늘리면서 가격을 500원 이상 올린 셈이다.

롯데제과 '빼빼로'는 경기 상황에 맞춰 용량이 유연하게 변해 온 대표 상품이다. 1986년에 50g으로 출시돼 1997년 외환위기 때는 40g으로 줄었고, 2000년대 초엔 원재료값 상승 파동을 겪으면서 33g으로 가벼워진 뒤 2009년엔 다시 30g으로 줄었다. 2007년엔 '롯데샌드 파인애플맛 오리지널'이 원래 네모난 모양에서 동그랗게 과자 디자인이 바뀌며 개당 9.3g에서 6.6g으로 몸무게도 줄었다.

◇회사마다 각양각색 가격 인상 편법

식품업체가 가격을 올릴 때 대외적으로 가장 자주 내세우는 이유가 "밀가루나 설탕 등 원자재 가격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가격 인상 요인 없이 제품 가격을 올리는 사례도 있다. 디아지오코리아는 한·EU FTA 직전인 작년 6월 '조니워커' '싱글톤' 등 주요 위스키 출고가를 최고 9% 인상했다. 그 바람에 작년 7월부터 위스키 관세가 5% 내렸지만, 오히려 주류 가격은 더 인상된 결과를 가져왔다.

최근 대형 식품업체가 잇따라 가공 두부 제품을 출시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역시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지정된 두부 시장에 대기업이 재진출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CJ제일제당은 '동그란 두부 스테이크' '동그란 두부바(bar)' 등을 출시하며 올해 120억원대 매출을 노리고 있다. 대상FNF풀무원도 각각 '부침엔' '하프앤하프' 등 가공 두부 신제품을 내놓았다. 비판 여론에 대해 해당 대기업은 "일반 두부와 가공 두부는 시장이 엄연히 다르고, 중소기업 시장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 만큼 상생(相生)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