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은 지난달 독일의 세계적 태양광 셀·모듈 제조업체인 독일의 큐셀(Q-Cells) 인수 협상을 타결했다. 1999년 설립된 큐셀은 2008년 셀 생산능력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던 글로벌 기업이다. 매출이 2010년 1조9000억원, 작년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한화는 큐셀 인수로 기존 한화솔라원의 1.3GW(기가와트)에 큐셀의 1GW 생산설비를 더해 연간 2.3GW의 셀을 생산할 수 있는 세계 3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큐셀의 파산신청(지난 4월 3일)과 5개월 만에 이뤄진 인수 협상 타결은 태양광 시장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다. 시장구조 개편과 글로벌 경제위기, 공급 과잉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는 세계 태양광 업계는 지금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요동치는 판도… 태양광 업계는 구조조정 중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인터넷판은 지난 8월 말 '어두운 구름이 호황을 누렸던 중국 태양광 산업에 몰려들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중국의 대표적 태양광 기업인 LDK솔라가 안후이성 허페이 공장의 종업원 5000명 중 4500명에게 장기 휴가 조치를 내렸다는 내용이다. 주문이 없어 전체 32개 라인 중 24개 라인이 멈췄기 때문이다. LDK솔라는 지난 5월부터 대규모 인원감축을 단행, 전체 2만명 중 1만명을 해고했다. 썬텍·잉리·트리나·JA솔라 등 중국의 태양광 업체들도 2011년 수백억~수천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썬텍의 경우, 부채가 35억8000만달러(한화 약 4조원)로 내년 초까지 당장 갚아야 할 돈이 5억4100만달러(약 60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업체 관계자는 "87개의 중국 폴리실리콘 생산업체 가운데 현재 공장을 돌리고 있는 곳은 4개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화솔라원이 2010년 중국 장쑤성(江蘇省) 치둥(啓東)에 세운 태양광발전소.

중국은 세계 태양광 시장의 생산공장이다. 원자재에 해당하는 폴리실리콘은 전 세계 시장의 33%를 차지하고 있고, 셀과 모듈은 점유율이 각각 59%, 61%에 달한다. 폴리실리콘과 셀의 중간 단계인 웨이퍼 생산량 점유율은 76%에 이른다. 중국의 부진은 세계 태양광 시장의 불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독일과 미국, 호주 등의 업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큐셀을 비롯해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법원에 파산보호신청을 했거나 사업을 접은 업체는 무려 40개가 넘는다. 국내에서도 최근 연 7000t의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을 가진 웅진폴리실리콘이 매각 시장에 나온 상태다. 미리넷솔라·경동솔라 등도 사업을 접었다.

태양광 업계의 불황은 생산업체들이 난립하고 과잉 공급, 덤핑 등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 태양광발전 설비의 공급용량(60GW)이 이미 설치용량(30GW)의 배를 넘어선 것으로 업계에선 추산하고 있다. 과잉 공급으로 인해 2010년 하반기만 해도 100달러를 넘던 폴리실리콘 가격은 요즘 20달러 안팎을 맴돌고 있다.

◇유럽 대신 북미·아시아 신흥 시장 부상

태양광발전 시장은 2010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겪고 있다. 당시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은 전 세계 태양광 설치 시장의 81%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65%까지 떨어졌다. 유럽 각국의 보조금 삭감으로 태양광발전 시장 자체가 줄어드는 양상도 나타났다.

그 자리를 북미와 아시아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미국, 일본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2015년이 되면 세계시장은 아시아 46%, 유럽 34%, 북미 15% 등 3강 체제가 정착될 것으로 업계에선 전망하고 있다.

친환경 재생에너지에 대한 수요 증가로 태양광발전 시장의 전망도 나쁘지 않다. 업계가 침체됐던 2011년에도 설치용량은 전년보다 60% 이상 증가했다. 원자재와 설치비용 인하로 태양광발전 비용이 석유·석탄 등을 이용한 발전과 같아지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도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높여주는 변수이다.

국내 태양광 업체 관계자는 "태양광 전문 조사기관인 '솔라버즈'는 작년 27.4GW였던 태양광발전 설비 설치량이 2020년에는 90.3GW로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며 "매년 25% 이상 성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2014년 기대하고 몸집 불리는 국내 업체들

국내 최대 태양광 업체인 OCI는 요즘 전북 군산에 있는 공장의 공정 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다. 공장 곳곳의 '병목현상'을 해결해, 연 1만t의 증산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OCI는 이 작업이 끝나는 내년 하반기에는 생산능력이 연 5만2000t이 된다.

한국실리콘은 지난 6월 폴리실리콘 생산능력을 연 3200t에서 1만5000t으로 늘리는 증설 작업을 끝내고,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간다. 한화케미칼도 전남 여수에 연 1만t 규모의 공장을 새로 짓고 있다. 이 공장은 내년 말 완공돼 2014년 초·중반부터 본격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국내 업계의 몸집 불리기는 세계 태양광 시장의 전반적 불황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내 업계는 내년 말 또는 늦어도 2014년 초부터 태양광 시장이 본격 회복될 것으로 보고 몸집을 키우고 있다. 그때쯤이면 상당수 중국 업체도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관계자는 "저품질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는 중국 업체들이 전 세계 시장의 약 38%를 차지하는데, 이 업체들은 1~2년 안에 경쟁에서 탈락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 업체들은 대부분 순도가 높은 고품질 제품을 만들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대규모 설비와 앞선 기술, 합리적 공정 등으로 무장해 생산 원가를 낮추는 능력도 한발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는 현재 20달러 선인 폴리실리콘 가격이 2014년 이후에는 30달러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중국 업체들의 생존 기간이 길어지면 가격 상승과 시장 구조조정이 좀 더 늦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태양광발전

광산에서 채굴한 규석에서 여러 공정과 화학반응을 거쳐 규소(Si) 성분만 추출해 덩어리로 만든 것이 폴리실리콘이다. 이를 녹여서 둥근 원통형으로 불려 만든 것이 잉곳이고, 이것을 얇게 잘라 웨이퍼를 만든다. 여기에 알루미늄 전극 등을 붙여 태양광을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게 셀이다. 모듈은 보통 60개 정도의 셀을 붙여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