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한 지난 14일 오전 9시. 서울 신림동·신대방동 일대 40~50대 아주머니들이 신림역의 A인력사무소로 삼삼오오 모여 들었다. 길게는 5년 이상 일용직으로 근무한 이도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최근 1~2년 사이 처음 인력시장에 유입된 ‘왕년의 전업주부’다.

이윽고 인력사무소 소장이 이날 들어온 일감을 아주머니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한다. 9시에 모인 아주머니는 모두 16명. 그러나 아침에 들어온 일자리는 10개가 채 안됐다. 인력 공급에 비해 수요가 모자란 셈이다.

늘 그렇듯 ‘힘 좋은’ 40대 중후반 아주머니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이 돌아갔다. 50대들은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경합을 벌이거나 추가 일자리가 들어오는 오후까지 기다려야 한다. 조선비즈는 이 날 식당 일용직 일자리를 얻은 김정남씨(가명·48)를 따라가 봤다.

신림사거리 인근 유흥가 밀집지역. 생업전선으로 내몰린 40~50대 주부들은 제일 먼저 식당, 술집 등이 많은 이 곳을 찾는다. 그러나 최근 불황 탓에 일용직 일자리 마저 감소하는 추세다.

◆ 20년차 주부, 남편 실직과 함께 생업에 내몰리다

“오늘은 운이 좋아.”

김씨가 오늘 받은 일은 서울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 근처 감자탕집 주방 보조다.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2시간을 꼬박 일해서 6만원을 받는 고된 일이지만 그녀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감자탕집 일이 그나마 수월하지. 어제는 한정식집에 갔는데 반찬 가짓수가 얼마나 많은지 하루 종일 음식나르고 설겆이 하느라 엉덩이를 바닥에 붙여 본 적이 없어.”

김씨가 일을 시작한 것은 불과 5개월 전. 20년을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녀는 남편의 실직과 함께 등떠밀리듯 A인력사무소를 찾았다. 가입비 7만원에 회비 3만원을 내면 매일 아침 일자리를 소개 받을 수 있다.

아직 40대라 비교적 오라는 곳이 많은 그녀지만 한 달 30일을 놓고 보면 실제로 일을 할 수 있는 날은 15~20일 안팎. 벌이는 90만~120만원으로 시원치 않다. 여기서 인력사무소 회비와 교통비 등 10만원을 제하고 나면 손에 쥐는 돈은 늘 100만원에 못미친다. 이 돈에 남편과 아들 둘, 총 네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다.

아직은 남편 퇴직금 덕분에 비빌 언덕이 있지만, 이 같은 생활이 계속되면 김씨 네 가족은 심각한 경제난에 빠질 수도 있다.

◆ 작년 40~50대 여성 취업, 20~30대 처음으로 추월

최근 수년간 계속된 글로벌 경기 불황과 함께 내수마저 위축되면서 김씨처럼 처음 생업 전선으로 내몰리는 중년 여성이 크게 늘었다.

서울시가 6월 발표한 ‘2011 경제활동인구·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여성 취업자 수에서 40~50대 중년층이 20~30대 청년층을 처음으로 추월했다. 2011년 중년 여성 취업자는 2010년과 비교하면 3.6% 늘었지만, 청년 여성은 1년 새 0.5% 줄었다.

40~50대 중년 여성 취업자 수가 20~30대 여성 취업자 수를 추월한 것은 성·연령별 취업자 수 통계가 작성된 1995년 이래 처음이다. 그만큼 지난해 새로 취업 시장에 유입되는 40~50대 여성이 늘었다는 뜻이다.

박영섭 서울시 정보화기획담당관은 “20~30대는 취업난 및 육아부담으로 취업을 포기하고 있는 반면, 중년여성은 자녀교육비 혹은 노후자금 대비 등의 이유로 경제활동에 다시 참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중년 여성 취업자수가 크게 증가한 것과 반대로 노동의 질은 현격히 낮아졌다. 20∼30대 여성은 전문·관리·사무직이 69.7%인 반면, 40∼50대는 서비스·판매·단순노무직이 56.3%를 차지했다.

40~50대들은 앞선 김씨처럼 최소 15년 이상 전업주부로 생활해온 탓에 사무직·전문직을 가질만한 직무 능력을 상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림역 주변 식당, 술집 등으로 파출부 인력을 공급하는 인력사무소. 불황에 40~50대 주부 인력공급이 늘면서 인력사무소도 성업 중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가장의 실직과 함께 처음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사실상 가정의 생계를 도맡고 있다. 따라서 중년 여성 취업자수가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해 노동의 질이 저하되고 있다는 것은 서민층의 생계가 점차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 올들어 중년 여성 일자리도 감소 조짐 ‘이중고’

문제는 올들어 경기 위축 상황이 더욱 심화되면서 중년 여성들이 취업할 수 있는 일용직 일자리마저 줄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초 통계청과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도·소매업에서 40대 여성 취업자는 6월에 1만3000명, 7월엔 2만5000명이 줄었다. 또 숙박·음식점업도 6월 2만8000명, 7월 5만5000명씩 줄었다.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과 임시·일용직에서 40대 여성 취업자가 줄고 있다는 것은 결국 대형마트 계산원이나 ‘식당 아줌마’가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년 여성 취업자를 가장 많이 수용했던 식당들이 대형화·프랜차이즈화에 나서면서 40대보다는 20~30대 여성을 우선 고용하는 것도 중년 여성들의 설자리를 잃게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아직 장기적인 추세로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최근 40대 여성 취업자수가 다소 줄어들고 있다”며 “식당 등 프랜차이즈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인력수요가 40대 여성에서 20~30대 여성으로 이동한 점도 이같은 현상을 가중시켰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