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이정미(가명·30)씨는 3년 전 회사원 남자 친구와 결혼 말 나오는 단계까지 갔다가 싸우고 결별했다. 양가 사이에 많은 말이 오갔지만 핵심은 결국 집값이었다. 이씨는 "그때 서울 시내에 전셋집 마련하지 못하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했다.

취재팀이 만난 이씨는 유별나게 허영심이 강하거나 생각이 비뚤어진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이씨는 2년제 전문대를 졸업했다. 취업이 어려워 3년간 식당과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전전한 끝에 간신히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아르바이트할 때 이씨는 월 90만원을 벌었다. 지금은 월 200만원을 받는다. 방값·밥값·교통비 등으로 월 80만원을 쓰고, 매달 20만원씩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다. 이씨는 "신장 수술을 한 뒤 10년째 병석에 누워있는 아버지, 가사 도우미로 생활비를 버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다. 나머지 100만원은 몽땅 저축한다. 그렇게 모은 돈이 5000만원이다. 3년 전 헤어진 남자 친구는 "네 저축에 내 돈 3000만원을 보태 신혼집을 얻자"고 했다. 이씨는 격분했다.

"저는 고생하며 자랐기 때문에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요. 제가 어떻게 모은 돈인데…. 그걸 고스란히 신혼집 마련에 털어 넣으면 그 다음엔 또 새로 시작해야 하잖아요. 집 해오는 남자와 결혼해도 고생해야 할 상황인데, 집도 못 해오는 남자에게 내가 번 돈을 털어 넣을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했어요. 나랑 똑같은 남자, 아니면 나보다 못한 남자와 만나 고생하느니, 나 혼자 벌어서 나 혼자 살 수 있으면 그게 낫다 싶었어요."

지난해 우리나라 남성은 평균 31.9세에, 여성은 평균 29.1세에 결혼했다. 20년 전보다 4년 이상 늦은 나이다. 결혼을 미루는 가장 큰 이유로 '집값'을 꼽는 것은 남녀 모두 똑같았다. 취재팀이 만난 신혼부부 77쌍과 미혼 남녀 42명이 이구동성으로 "집값이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공감은 거기까지였다. '그 장애물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이르면, 남녀의 태도가 갈라졌다. 남자 혼자 집값을 다 대지 않고 양쪽이 분담한 경우 반응이 달랐다. 남자는 대다수가 "내가 반밖에 못 댔다"고 말한 반면, 여자들은 "내가 반이나 댔다"고 했다.

"두 살 연상 여자 친구가 '너 혼자 내기 정 힘들면 내가 집값을 보태겠다'고 하는데, 고마우면서도 미안했어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제가 더 많이 벌어서 결혼하려고요."(박정호·가명·30·내년 결혼 예정)

"마음 같아선 남편이 집을 해오고, 저는 혼수만 하면 좋죠. 하지만 남편과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 할 수 없이 집값을 반씩 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집도 못 해오는 남자에게 왜 시집 가려고 하냐'고 속상해하셨어요. 부모님 설득하는 데 한 달이 걸렸어요. 친구들은 저보고 '속없는 바보'라고 해요."(김모림·가명·28·지난 5월 결혼)

부모 세대는 전셋집에서 출발할 수 없으면 단칸방을 택했다. 자식 세대에서 "그렇게는 못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건 남녀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남성은 "어떻게든 모아서 결혼해야겠다" "분담하자고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여성 중에는 "고생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찬반토론] 부모님 울리는 결혼 비용, 원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