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환 유플랜계리컨설팅 부대표

지난 2010년 말 현재 우리나라 상장기업 가운데 외부에서 CEO를 데려온 기업의 10% 이상은 삼성 출신을 영입했다. 또 같은 때를 기준으로 외부감사 대상 기업의 임원 4만8000여명 가운데 삼성 출신이 1160여명(2.4%)에 이른다. 반면 현대자동차와 SK, LG그룹 출신 임원은 각각 240여명 수준에 머문다. 삼성 출신이 다른 그룹 출신의 5배에 이르는 셈이다.

헤드헌팅 회사를 찾아 CEO나 임원을 추천해 달라는 기업 가운데 30% 정도는 '기왕이면 삼성 출신'을 요구한다고 한다. 삼성은 타사에 비해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 비율이 상당히 낮고, 지방 출신도 많다. 그런데도 왜 기업들은 삼성 출신을 원하는 것일까? 거기엔 7가지 이유가 있다.

①벽돌처럼 일사불란하다

삼성 출신 가운데 돌출된 행동을 하거나 엉뚱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다. 생각이나 행동도 평균적으로 예측 가능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큰 성공은 몰라도 사고나 문제 가능성이 적다는 이야기다. 삼성에 입사하면 채용 과정과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반듯한 성향으로 키워진다. 조직에 적합한 인재로 키워진 이들은 '벽돌'로 비유되기도 한다. 단단하고 정형화된 벽돌은 어떤 모양으로도 조합이 가능하다. 외부에서 경영자를 스카우트하는 기업 오너 입장에서는 전권을 맡기기보다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경영권을 위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경영자를 원하는데, 이런 면에서 단단한 벽돌로 양성된 삼성 출신은 딱 맞아떨어진다. 하지만 모양이 똑같은 벽돌은 개성이 없고 창의력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②조직으로 일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삼성 출신들은 조직으로 일하는 노하우를 배운다. 담당 부서와 협의해 의사 결정을 하고 수많은 사람이 서로 협조하며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일부 직원이 이탈해도 조직이 그대로 돌아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삼성은 일선 담당자에게 과감하게 권한과 업무를 이양한다. 담당자는 회사의 주요 의사 결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조직은 담당자 의견을 존중한다. 많은 기업이 주요 정책 결정을 CEO나 몇몇 핵심 스태프가 쥐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른 점이다. 이렇게 조직으로 일하는 노하우를 가졌기에 다른 조직에 가서도 이런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③운명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삼성 출신들은 군대 내무 생활에 버금가는 조직 생활을 통해 조직력을 체득한다. 8시간 근무시간은 다른 기업과 같지만, 식사시간은 물론 퇴근해서도 조직 생활을 이어간다. 낮에는 야단치고 밤에는 다독거리며, 근무시간에 언쟁을 벌이던 다른 부서원들과 저녁에 만나 화합하는 일이 많다. 경조사 때 수백 명, 수천 명이 다녀가는 건 어느 조직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군대처럼 생사를 같이한다는 공동체 의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문화를 자기 회사에도 이식시키고 싶은 게 기업 오너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래픽=송윤혜 기자 ssong@chosun.com

④한국형 기업 경영의 성공 모델을 경험했다

삼성 출신은 한국식 경영으로도 세계 정상급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서양의 능력주의와 동양적인 조직 정서를 동시에 존중하는 경영방식이 삼성의 한국형 성공모델의 핵심이다. 삼성의 능력주의는 개인들이 소지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고 그 결과를 처우에 반영하는 서양식 능력주의와 달리, 기본 자질만 보유한 인적 자원들을 채용해 사내에서 직무에 필요한 자질을 육성시켜서 그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육성형 능력주의'라고 볼 수 있다.

⑤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몸에 배어 있다

삼성 출신은 신중한 의사 결정 방식이 몸에 배어 있다. 의사 결정을 할 때 모든 관련 변수들을 검토하고, 의사 결정에 필요한 관련 부서들과 치밀하고도 지난한 난상토론식 검토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경영자의 독단이나 일방적인 의사 결정이 적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식의 너무 신중한 의사 결정이 스피드가 필요한 상황에선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삼성 출신은 또한 서로 경쟁하듯 정보를 숨겨가며 자기 부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차원의 총체적인 이익을 지향한다. '사일로(silo·곡식 저장 창고인 사일로처럼 남과 벽을 쌓고 자기 이익을 챙기는 부서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회사 이익에 어긋나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적다.

⑥파벌을 만들지 않는다

어떤 기업에 컨설팅을 나갔다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부사장은 등산반이고 경쟁자였던 전무는 낚시반이었는데, 최근 인사에서 등산반 출신이 대거 요직에 기용됐다. 그런데 그 인사 내용의 골자를 전월 등산 모임에서 결정했다는 소문이었다. 삼성에선 그런 일이 상대적으로 적다. 삼성은 출신 성향에 따른 비공식 모임이나 '줄 대기' 문화를 금기시한다. 상사나 인사부서에 기웃거리지도 않는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그런 교육을 철저히 받는다. 파벌을 배격하는 이런 전통은 기업이라면 어디서나 받아들이고 싶을 것이다.

⑦목표에 대한 몰입도와 열정이 강하다

삼성 출신은 책임감이 대단하다. 목표가 정해지면 당연히 달성해야 하는 것이고, 달성하지 못하면 어떤 변명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삼성에서는 목표를 결코 안일하게 설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세우지도 않는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겨우 이룰 수 있는 정도의 목표를 설정하고 전 직원이 달성을 위해 매진한다.

[삼성 출신들의 내재된 단점]

벽돌같은 단단함은 창조적 발상에 걸림돌…
지나치게 신중하다 보면 새로운 흐름 놓칠 수 있어

삼성 출신들에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일사불란한 조직력과 돌파력을 갖추고 있지만, 융통성이 다소 떨어지는 군대 문화의 단점이 삼성 출신들에게 내재돼 있다.

예를 들어 돌격 정신은 삼성 출신의 최대 장점으로 꼽히지만, 마치 중앙당(黨)이 결정하면 무조건 돌격하는 형태의 조직이기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돌격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고뇌해 바른 방향으로 돌진하도록 관제 타워의 역할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

삼성 출신은 지나치게 신중한 측면도 있다. '삼성은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조금만 이상하면) 건너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사실 삼성은 지나친 신중함 때문에 반도체·스마트폰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사업 분야의 진출에 대부분 다른 기업에 앞서지 못했다. 조직은 오래될수록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다. 지나치게 신중하다 보면 새로운 흐름을 놓칠 수 있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삼성 출신의 벽돌 같은 단단함은 강점을 발휘할 때가 많다. 하지만 새로운 혁신과 창조적인 발상에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때론 반듯함을 버리고 청바지를 자유롭게 입고 다닐 정도의 돈키호테적인 조직 분위기를 조성해야 자발적인 창의성이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인들은 내부 지향성이 강하다. '우리끼리', '우리가 남이가(남인가)' 정신이 팽배하다 보니 외부와는 비즈니스를 제외하고는 열린 만남이 드물다. 강하고 큰 기업에서 훌륭한 기업으로 더 높이 날기 위해서는 사회와 호흡하는 노력이 한층 강화되어야 한다. SK그룹은 '장학퀴즈' 하나로 국민들과 대화하는 좋은 기업 이미지를 만들었다. 삼성은 매년 수천억원의 사회봉사·기부활동을 하고서도 국민들로부터 우호적인 시선이 약한 게 사실이다. 비즈니스만이 아니고 사회 활동과 개인들의 친교 활동조차도 더 자유롭게 열어나가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조영환 부대표는

26년간 삼성그룹의 인사·조직 분야에서 일했고, 삼성화재 인사 담당 임원을 역임했다. 삼성그룹의 신인사 제도 혁신 작업에 참여했고, 삼성 금융 계열사의 인사제도 혁신팀장을 맡는 등 인사 실무와 조직 관리·조직 진단 컨설팅 업무 등을 담당했다. 현재는 보험 상품 개발·진단회사인 유플랜계리컨설팅의 부대표로 일하면서 강연과 조직 진단 컨설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