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으로 유명한 미국 기업 3M은 1990년대 이후 매출과 순이익 정체라는 위기에 빠졌다. 2000년 12월 3M은 착 가라앉은 조직에 충격을 가할 외부 인사로 GE 잭 웰치 회장 밑에서 일하던 제임스 맥너니를 CEO로 영입했다. 3M 10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임직원 7만5000명 중 6500명을 줄였다. 생산품 불량률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영업사원들에겐 "고객 만족 경영을 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주입했다. 그가 CEO로 취임했을 때 3M의 매출은 167억달러였다. 그가 회사를 떠난 2005년 말 회사 매출은 212억달러로 늘어났다. 주가도 거의 2배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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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기존 역량으로는 해외 유명 자동차업체를 따라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기아자동차는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다음 해 7월 기아차는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에서 디자인을 총괄하던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그는 기아차 디자인을 확 바꿨다. 디자인 방향은 '직선의 단순화'였다. 지금의 기아차 주력인 K5, K7이 그의 작품이다. K시리즈가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2010년 기아차는 내수 30%를 돌파했다. 그는 지금도 기아차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다.

우수한 인재를 뽑고 키우는 것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경영학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함께 일할 적합한 사람을 찾아내는 일"이라고 했다. 세계 경기가 침체되고 기업이 어려움에 처할수록 인재의 소중함은 더욱 커진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훌륭한 인재가 최대의 경쟁력이고 성장동력"이라고 했다. 그 중요성을 알기에 국내 기업들은 지금 위기를 헤쳐나갈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치열한 '인재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적 불문 전문가 영입 적극적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지난 4월 미주지역 석·박사 유학생을 대상으로 연 채용 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 계열사 경영진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구 회장이 인재 유치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구 회장은 작년 말 LG 인재개발대회에서 "좋은 인재를 뽑으려면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것처럼 CEO가 직접 찾아가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좋은 인재가 있다면 회장이라도 직접 찾아가겠다"고 했다. 구 회장 입장에선 자신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재계에선 "스마트폰 경쟁에서 뒤처진 구 회장이 연구 개발 인력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산악 패기 훈련’에 참가한 SK그룹 신입사원들.
입문 교육에 참가한 삼성그룹 신입사원.
올해 공채로 선발된 LS그룹 신입사원들.

실제로 LG는 연구 개발 인력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 연구 개발 인력을 2000명 더 뽑아 총 2만9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임원급 대우를 받으면서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연구전문위원도 올해 55명을 추가로 선발했다. 현재 연구전문위원만 200여명이다.

인재 욕심에 관한 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삼성도 글로벌 인재 영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이 1993년 "우수한 사람 한 명이 천 명, 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말한 이후 국적을 불문하고 특정 분야 전문가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삼성전자 북미통신법인이 작년 6월 나이키의 마케팅 디렉터인 토드 펜들턴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영입한 것이 그 예다. 삼성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 북미시장 스마트폰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를 영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CEO는 직접 핵심 인력을 면접하고, 1년에도 몇 차례씩 핵심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출국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수 인재를 S, A, H급으로 분류해 관리하는 삼성은 S급 인재들에겐 파격적인 연봉과 과감한 스톡옵션을 통해 충분한 보상을 해준다. 최근에도 경쟁사인 노키아에서 인력을 충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최고 인재를 찾기 위한 노력은 늘 하지만, 비밀 유지 차원에서 대외적으로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공개 채용에선 '열린 채용'이 대세

세계적인 경기 침체에도 국내 대기업들은 올 하반기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늘리기로 했다. 10대 그룹은 올 하반기에 지난해(3만6800명)보다 17% 늘어난 4만3200명을 뽑겠다고 최근 밝혔다. 본격적인 채용은 9월 초부터 시작한다.

올해 공개 채용에선 저소득층 자녀, 고졸 출신, 지방 대학생들을 골고루 뽑는 이른바 '열린 채용'이 대세다. 기본적으로는 능력 위주로 사람을 뽑되, 가정 형편 등으로 학습 기회를 충분히 얻지 못한 계층에는 별도의 취업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9월부터 진행하는 하반기 3급 신입공채 때 소외 계층의 고용을 확대하는 '함께 가는 열린 채용'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방 대학생 채용 비율을 현재의 25~27%에서 35%까지 늘리고, 신입사원의 5% 수준인 400~500명을 저소득층 가정의 대학생 중에서 뽑기로 했다. 지난 4월에 시작한 고졸 공채 선발 규모도 당초 600명에서 700명으로 늘렸다.

현대차는 마이스터고 산학협력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미래의 전문 기술 인재로 성장할 'HMC 영마이스터' 1기 100명을 선정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향후 10년간 마이스터고 2학년생을 대상으로 총 1000명의 우수 인재를 선발할 계획이다. 이들은 현대차에서 지원하는 단계별 집중 교육을 받고 나중에 현대차의 정규직으로 채용될 예정이다.

SK는 출신 학교와 전공, 학점, 어학점수 등 이른바 '스펙'에 따른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통해 가치관, 직무역량을 중심으로 선발하는 열린 채용이 원칙이다. 신입사원 공채 시 장애인을 우대하고 지방대생의 채용을 늘리기 위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채용 설명회를 열고 있다.

LG도 올해부터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기초생활수급자에 가산점을 주고 있다. 가산점 수준은 계열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고졸 채용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올해 기능직 7500명 중 76%에 달하는 5700명을 고졸 출신으로 채용할 계획이다. 작년 고졸 채용 비중은 68%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