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경기 장기침체로 아파트 중도금이나 잔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은행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냈던 아파트 계약자들이 잇따라 패소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입주 아파트 가격이 주변 시세 보다 20~30% 낮아 분양계약 무효 소송을 진행 중인 수도권 중심의 아파트 계약자들이 연체이자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8부는 24일 경기도 김포시 ‘한강우미린’ 아파트 계약자들이 우리은행과 농협 등을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은 계약자가 분양계약 무효를 전제로 금융기관을 상대로 중도금 대출 채무가 없다는 확인을 구하는 소송이다. 재판부는 계약자들이 시공사인 우미건설을 상대로 한 분양계약 해제 소송도 기각했다.

재판부는 “분양계약이 취소됐다고 볼 수 없고 분양계약이 해제된다고 해서 계약자의 대출상환 의무가 소멸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결했다.

한강우미린 아파트는 전체 1058가구의 절반 가량인 515가구가 중도금·잔금 납부를 거부하며 소송을 진행해 왔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은 지난해부터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급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4월말 현재 28개 사업장에서 4190명이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벌이고 있다.

아파트 중도금 대출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 전경.

문제는 이 소송에서 아파트 계약자들이 이기기가 어렵고 패소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 연체이자를 물어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판결이 있었던 경기도 고양시의 A아파트, 경기도 남양주시 B아파트, 경기도 용인시 C아파트의 경우 모두 입주 예정자들이 패소했다.

법무법인 '정성'의 황정란 변호사는 "아파트 분양계약의 해제는 제한적으로 인정되기도 하지만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서 계약자가 이기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이번에 패소한 한강우미린 아파트 계약자들은 판결이 확정되면 미납한 중도금·잔금에 대해 입주기간이 종료된 시점인 올 2월 1일로 소급해 연체이자를 물어야 한다. 연체이율은 연 15~16% 수준이다. 만약 4억원짜리 아파트를 분양받아 분양가의 60%인 중도금 2억4000억원을 연체했다면 현재까지 6개월간 약 1800만원의 연체이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분양가의 20~30% 수준인 잔금에 대한 연체이자까지 감안하면 전체 연체이자는 약 3000만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항소를 통해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 패소 시 내야 하는 연체이자도 늘어난다. 만약 소송에서 승소하면 중도금·잔금 납부 부담이 사라진다.

아파트 계약자들은 중도금·잔금 납부를 거부하면서 소송을 끌어가기 위해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채무부존재 확인소송 중에는 중도금·잔금 납부를 연체해도 확정판결 전까지는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수백억~수천억원 규모의 잔금 납부를 거부하면 자금력이 약한 건설사들이 분양대금을 깎아줄 것으로 기대하기도 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아무 이유없이 분양대금을 수천만원씩 깎아줄 수 없고 만약 깎아준다고 해도 소송 기간이 길어지면 연체이자가 더 커지기 때문에 배보다 배꼽이 클 수 있다"며 "아파트 계약자들이 소송의 위험성을 정확하게 알고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