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경제에 '디플레이션(가격하락)' 시나리오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부쩍 높아졌다. ①부동산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②빚을 내서 집을 산 가구가 결국 빚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자산을 처분하면서 가격 하락이 가속화되고→③가구 소비 여력이 줄고→④기업의 실적이 나빠져 고용과 투자가 줄고→⑤한국경제의 성장률이 낮아진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다. 극단적으로는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1년 전보다 1.7% 하락한 것이 그 전조(前兆)로 읽히기도 한다.

한국 경제가 실제로 디플레에 빠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지만, 디플레가 인플레이션보다 훨씬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직후 등 잠깐을 제외하고 특별히 디플레를 경험해본 적 없는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곧 닥칠지도 모를 디플레에 대비해 미리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현금이 왕이다

디플레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주식, 부동산, 원자재 같은 투기성 자산의 가격이 모두 하락한다. 세계 경제사에서 가장 유명한 디플레 사례는 1929년 미국 대공황과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장기불황이 꼽힌다. 대공황 당시 미국의 주가는 최고치 대비 90% 떨어졌고, 부동산도 동반 하락했다. 일본에서는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며 주가가 3분의 1토막나고, 부동산 가격도 60%가량 하락했다. 결국 디플레의 기간에 가치가 오르는 유일한 자산은 현금이다.

바꿔 말해 디플레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빚을 내서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한 사람이다. 보유자산의 가치는 하락하는 동시에 실질금리가 상승하면서 부채의 부담이 증가하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게 된다. 이미 명목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실질 대출금리는 지난해 1.8%에서 올해 상반기 3.3%로 배 가까이 뛰었다. 따라서 디플레가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먼저 빚을 줄여야 한다. 반대로 현금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통화(通貨)를 적극적인 투자 대상으로 고려해볼 수도 있다. 디플레 시대에는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대한 걱정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우량국 국채와 통화가 강세를 보인다.

금리부 상품을 찾아라

디플레 시대에는 수익률은 낮더라도 안전하면서도 꼬박꼬박 현금을 주는 상품이 제일이다. 예금, 국채, 초우량 회사채 등이다. 또 이 기간에는 이자율이 하강 곡선을 그리기 때문에 예금이나 채권 모두 단기 상품보다는 장기 상품이 유리하다. 반대로 대출자 입장에서 고정금리보다는 변동금리가 낫다.

집 한 채 외에 특별한 자산이 없는 은퇴자들은 요즘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왕 가입할 거라면 빨리 가입하는 게 낫다. 집값이 떨어질수록 연금 수령액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65세 은퇴자가 5억원짜리 아파트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경우 월 143만원을 받지만, 만약 집값이 10% 떨어진 시점에 가입하면 수령액이 월 129만원으로 쪼그라든다. 주식 중에서는 성장주 대신 배당률이 높은 주식에 대한 선호가 높아진다. 주가가 절반 이상 폭락하지 않으면 연 7% 수익을 보장하는 식으로 설계돼 있는 주가연계증권(ELS)도 디플레 시대에 유용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 증시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펀드 등도 주가 하락에 대비하는 방법이다.

스태그플레이션에는 금(金)

금 신봉자들은 금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에 모두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한다. 하지만 금은 1980년대 이후 20년 이상 장기 약세에 빠진 적이 있고, 요즘에는 가격이 투기자본에 의해 요동치기 때문에 그다지 안정적이지 못하다. 하지만 '보험' 차원에서 자산의 일부를 금에 투자하는 것은 고려해볼 만하다. 물가인상과 경기침체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일 때 금이 특히 위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오일쇼크로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1980년을 전후해 금 가격은 10배 가까이 뛴 적이 있다. 실질가치 면에서 금 가격은 아직도 그때의 고점을 회복하지 못했다.

언젠가는 반등한다

디플레는 소리없이 시작돼 짧게 지나갈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요란한 파열음을 낸 다음 몇 년간 고통스러운 침체의 기간을 거쳐 회복하는 패턴을 보인다. 가계부채의 압박이 강해진 지금은 더욱 그렇다. 따라서 실제 디플레가 발생한다면 기업의 도산, 개인 파산, 부동산 가격 폭락 등의 홍역을 치를 가능성이 있다. 현금을 보유한 고수들은 이런 때를 기회로 여긴다. 혼란기에는 신용경색으로 금리가 일시적으로 치솟았다가 점차 안정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타이밍을 잘 잡으면 금리상품만으로도 단기차익을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12월 수익률 8.9%인 회사채를 사서 1년 뒤에 5.3%에 팔았다면 시세차익과 이자로 16%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또한 디플레는 신용팽창과 과잉공급으로 인한 거품을 걷어내는 조정 과정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기간을 견디면 경제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자산 가격이 '충분히' 낮아진 시점에 매입한 뒤 반등을 기다려볼 수도 있다. 물론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는 경우는 예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