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성장률이 급락한 구미(歐美) 선진국과 1990년대 버블 붕괴와 함께 급격하게 성장률이 둔화된 일본의 공통점은 출산율 하락과 청년 실업 확산이었다. 이로 인해 미래의 성장동력인 인적자본 축적이 뒷걸음질하면서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더 이상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이 20세기 중반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람, 즉 인적자본이지만 이제 선진국의 전철을 밟는 징후가 뚜렷하다. LG경제연구원은 19일 '대한민국 인적자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출산율 저하와 청년 실업 고착, 높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확대의 세 가지 문제로 인해 한국의 인적자본이 크게 손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산율 저하 탓, 잠재성장률 1%대로 떨어질 것

첫째 적신호는 출산율 저하다. 출산율은 미래 인적자원을 가늠할 수 있는 주요 지표다. 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아이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1960년 6.0명이었지만, 지난해엔 1.24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낮아졌다. 이는 소득은 별로 늘지 않는데 주택구입비·교육비 등 결혼과 육아에 필요한 지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가계 소비에서 교육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는 7.3%로 싱가포르 3.3%, 미국 2.2%, 독일 0.9%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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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저하는 두 가지 경로를 통해 경제의 잠재적인 성장 능력을 낮추게 된다. 우선 노동의 양적인 투입을 제약하게 된다. 다음으로 소비층인 고령 인구의 비중이 높아짐으로써 저축률이 낮아지고 결국 투자 둔화로 이어진다. 연구원은 출산율 저하로 일할 사람들이 줄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030년대에 1.7%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잠재성장률은 생산자원을 모두 투입했을 때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달성할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말한다.

이근태 연구위원은 "출산율 반등에 성공한 프랑스는 출산율을 높이는 것과 관련된 지출이 GDP의 3%에 달하는데, 우리나라는 0.8% 수준"이라며 "당장은 재정 부담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이고 세입 기반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재정 지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청년실업 길어지면 임금도 줄어

둘째, 청년 고실업의 고착은 숙련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킬 기회를 줄인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0~1997년의 청년(15~29세) 실업률은 평균 5.5%였지만, 2000년대엔 평균 7.3%로 올랐으며, 이후 위기 이전 수준으로 내려가지 않고 있다.

청년 실업이 고착화되면 근로자의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임금도 함께 줄어든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06년 하반기부터 2007년 상반기에 대학을 졸업한 1만4000명의 2010년 임금을 조사한 결과, 2008년까지 취업한 사람은 평균 월급이 229만원이었지만 그 뒤에 취업한 사람은 190만원으로 약 20% 줄어들었다. 직장을 구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신감이 떨어져 적은 임금의 일자리라도 잡으려는 현상 때문이다. 연구원은 이같은 일자리 하향 지원 때문에 청년층 실업자들이 상실한 소득이 지난해 2조800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청년 실업이 장기화할 경우 근로 의욕을 상실해 취업 자체를 포기하는 '니트(NEET)족'이 증가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니트족 수는 1995년 51만명이던 것이 2010년에 130만명을 넘어섰다.

고용 불안과 생존경쟁으로 우울증과 자살 급증

인적자본이 손상되는 셋째 징후는 우울증 환자나 자살자가 급증하는 사회병리 현상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사람은 2000년 475명에서 2010년 1071명으로 10년 사이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인구 10만명당 자살한 사람 숫자는 2010년 31.2명을 기록,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연구원은 "외환위기 이후 자살률이 급격히 늘어났는데 고용이 불안해지고 생존을 위한 경쟁이 심해지면서 전반적인 스트레스와 우울증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2010년 통계청 조사 결과, 20~50대가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장 큰 원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꼽았다. 연구원은 우울증 환자의 작업 손실 일수와 자살자의 소득 감소분 등을 감안해 계산한 결과, 우울증과 자살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한 해에 11조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