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정낙원(가명)씨는 올 초 ‘일정 비율만 결제하면 자금 연체가 방지되는 서비스’란 말만 믿고 카드 리볼빙을 썼다가 깜짝 놀랐다. 카드 대금의 10%만 결제되고 다음 달로 결제 시기가 늦춰져 나머지 90%에 대해선 연 20% 이상의 수수료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매월 원금의 10%만 갚다 보니 리볼빙을 이용한지 5개월이 지나자 갚아야 할 카드 대금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수수료도 덩달아 늘었다. 결국 정씨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그동안 밀렸던 카드 대금을 완납하고 서비스를 해지했다.

카드 리볼빙이 연 30%에 달하는 수수료를 받아 ‘고금리 장사’라는 비판을 받는 가운데 카드사들은 여전히 리볼빙을 ‘선진 결제 서비스’, ‘선진 금융 서비스’라고 소개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카드사들은 리볼빙에 ‘자유결제서비스(롯데·현대카드)’, ‘페이플랜(국민카드)’ 등 다양한 이름을 붙여 혼란을 주고 있다.

신한카드는 리볼빙 결제가 일반 결제보다 장점이 많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하고 있다. 일반 결제는 매월 청구금액 전액(100%)을 결제해야 하고 미결제 잔액은 연체 처리돼 신용손상이 오지만 리볼빙 결제는 5~100%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결제해도 신용이 보호된다고 설명했다. 신한카드는 “탄력적인 자금운용과 신용보호가 가능한 선진 결제 서비스”라고 리볼빙 제도를 소개했다.

롯데카드도 일반 결제의 경우 결제 금액을 연체하면 신용이 악화하고 최고 연 29%의 연체 이자가 부과되지만 자유결제방식(리볼빙)을 이용하면 연체가 방지되고 최저 연 7.89%의 저렴한 이자율만 부과된다고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국민카드나 하나SK카드, 우리카드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한카드가 홈페이지를 통해 설명하는 리볼빙 결제와 일반 결제의 차이점. 리볼빙 결제가 일반 결제보다 우수한 서비스라고 알리고 있다.

리볼빙은 카드 대금의 일부만 결제하고 잔금은 다음 달로 늦춰주는 서비스다. 카드사들은 이월되는 금액에 최고 연 27~28% 수준의 이자를 수수료로 받는다. 최저금리는 연 6.5~8% 수준이지만 최저 금리를 받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금융감독당국과 신용평가업체에 따르면 카드사의 리볼빙 제도를 이용하는 고객은 290만명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7~10등급의 저신용층인 것으로 추정됐다. 이에 따라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면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가 양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리볼빙을 이용했다가 이자 부담으로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바람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볼빙 잔액은 지난해말 기준 6조1000억원으로 1인당 210만원 수준이다.

카드사들은 리볼빙의 장점은 홍보하면서 소비자에게 불리한 내용은 알리지 않거나 약관에 간단하게 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리볼빙을 많이 이용하면 개인신용등급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지만 카드사들은 이를 알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개인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리볼빙을 이용하면 그만큼 부채(신용카드 잔액)가 커지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낮아질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또 롯데·신한·국민카드 등 일부 카드사들은 카드회원이 한 카드에 대해 리볼빙을 신청하면 본인카드 뿐만 아니라 가족카드에도 일괄 적용한다. 이 때문에 가족카드 이용자들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 리볼빙에 가입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지난해 한 소비자 단체에서 서울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리볼빙 서비스를 이용해 봤다고 대답한 사람 중 72.5%가 '가입사실을 몰랐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도 최근 감사원이 리볼빙의 문제점을 지적하자 뒤늦게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카드사의 무분별한 영업을 금지하고 리볼빙 금리를 낮추는 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리볼빙 이용 시 결제하는 최소 비율도 높일 계획이다.

카드사들은 리볼빙 서비스가 고객 지향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리볼빙은 신용 한도 내에서 결제 방식과 결제율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고객 편의에 맞춰진 제도"라며 "일시적으로 자금 사정이 어려운 사람은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