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는 홈네트워크 기업 코맥스 본사 1층 전시실에 들어서면 세계 120여개의 국기(國旗) 모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보안 감시 카메라, 출입 관리 시스템 등 코맥스 제품이 팔리는 국가의 국기를 한데 모아놓은 것이다.

지난해 매출 930억원을 달성한 코맥스는 해외에서 훨씬 더 기술력, 회사가치를 인정받는다. 한 대기업이 해외에서 "코맥스보다 30% 싸게 납품하겠다"며 저가 수주 경쟁을 펼칠 정도다. 해외 중소 업체들은 '짝퉁 코맥스' 판매에 열을 올린다.

창업자인 변봉덕(73) 회장은 1970년대 초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해외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는 "중소기업도 기술과 브랜드 경쟁력을 쌓으면 규모가 큰 대기업과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대기업보다 30% 비싼 값 받는 코맥스

창업자인 변 회장은 공학이 아닌 수학(한양대)을 전공했다. 1968년 서울 세운상가에서 전화기와 인터폰을 만드는 '중앙전업사'를 창업했다. 나라 전체가 가발·신발 같은 노동집약 산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던 시절에 이름조차 생소한 정보통신 산업에 뛰어든 것이다. 때마침 1970년대 초반 전국에 아파트 건설 열풍이 불면서 이 회사가 만든 인터폰은 만들기 무섭게 팔려 나갔다. 자신감을 얻은 변 회장은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처음엔 '극빈국'의 낯선 기업인에게 납품을 맡기려는 바이어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1973년 무턱대고 찾아간 미국 한 소매업체로부터 3만달러어치의 인터폰 납품 주문을 처음 받아냈다.

현재는 120여 개국에 통신기기 1250여 종을 수출한다. 지난 40여년 동안 누적 수출액은 8억달러(9200억원). 2~3년 안에 10억달러를 돌파할 예정이다.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의 수출을 전혀 하지 않고 정보통신기기 부문에서 한 우물을 파서 일군 성과다. 회사 내부에서 "OEM 수출로 외형을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지만, 변 회장은 "정도(正道)가 아니다"며 개의치 않았다. 그는 "1990년대까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은 세계 시장에서 엄청난 괄시를 받았다"면서 "그럴수록 우리 브랜드를 붙인 최고 품격의 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휩쓸겠다는 오기(傲氣)가 생겼다"고 말했다.

코맥스 변봉덕(왼쪽) 회장은 한국이 극빈국 대우를 받던 1970년대 초부터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서 코맥스를 대기업 부럽지 않은 통신기기 전문업체로 키웠다. 잘나가던 성악가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한 아들 변우석 부사장은 “제가 과연 경영을 맡을 능력이 되는지 지금도 매일 스스로 되돌아본다”면서 “회사를 더욱 성장시켜 지금껏 받은 크나큰 혜택을 꼭 사회에 되돌려주겠다”고 말했다.

OEM 안 하고 자체 브랜드로 수출

2000년대 들어 IT의 확산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됐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유선에서 무선으로 기술 흐름이 바뀌면서, IT 기술을 적극 수용한 코맥스의 세계 위상은 갈수록 커졌다. 이 회사는 매년 매출액의 10%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한다. 현재 R&D 인력은 전체 직원의 25%(약 60여명).

최근에는 휴대전화 등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첨단 홈네트워크 시스템, 입원실과 수술실에서 활용되는 지능형 의료 시스템 기술을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변 회장은 "과거 우리를 무시하던 외국 기업들이 요즘은 우리가 어떤 신제품을 개발하는지 주목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변 회장은 한때 회사 지분을 정리하고 사업 현장에서 물러나려 했다. 코맥스에 관심을 보이던 한 유럽 기업이 지분 매각을 제의해 왔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그는 2006년 1월 이탈리아에서 성악가로 활동하던 외아들 우석(41)씨를 두바이 출장지로 불러, "네가 회사를 경영할 생각이 없다면 나는 지분을 팔고 경영에서 물러날 생각"이라고 이야기했다.

서울대 음대와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거친 우석씨는 당시 세계 최고 오페라단인 '라 스칼라'에서 정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이전까지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을 살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하면서 살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면서 "과연 내가 음악을 포기하고 살 수 있을지, 회사를 맡을 능력이 있는지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10년 동안의 이탈리아 생활을 정리한 뒤 같은 해 8월 회사 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주변에서 자기 회사의 제품과 기술도 모르느냐는 소리를 들을까봐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며 인터뷰 내내 경영 관련 숫자나 어려운 기술 용어를 막힘없이 이야기했다.

변 부사장이 요즘 특히 관심을 갖는 것은 디자인이다. 홈 네트워크 제품은 주택과 수명을 같이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튼튼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각국의 소비자 입맛에 맞춰 차별화하려면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가 개발을 주도한 홈네트워크 제품은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상(賞)인 'iF 디자인' 수상작으로 뽑혔다.

변 회장은 아들에 대해 "아직 배울 것이 많지만 월급 값은 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사람은 물론 기업도 장수(長壽)가 중요한 가치"라면서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코맥스를 100년 이상 지속되는 기업으로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 부사장은 "남들은 살면서 한 번도 누리기 어려운 혜택을 (음악가와 기업가로) 벌써 두 번이나 받았다"면서 "앞으로 내가 받은 혜택을 반드시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도록 회사를 키워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