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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다니는 김모(38) 과장은 지난주 은행에서 3000만원짜리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다. 5년 전 경기도 분당신도시에 4억6000만원을 들여 장만한 전용면적 70㎡ 아파트를 매물로 내놨지만 6개월 넘게 팔리지 않아서다. 김씨가 이 아파트를 사면서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은 3억원. 문제는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연 5%대의 대출 이자(월 125만원)만 내왔는데 원금(월 100만원)까지 함께 갚게 되면서 자금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 김씨는 "주변 시세보다 3000만원쯤 싸게 내놨는데 가격 흥정조차 붙여보려는 사람이 없다"며 "월 350만원 봉급으로 대출 원리금 상환에 생활비까지 감당하려면 추가로 대출받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하우스푸어의 탈출구가 점점 봉쇄되고 있다. 집을 팔아 빚을 갚고 싶어도 주택거래가 중단돼 팔리지가 않기 때문이다. 집값도 속절없이 떨어져 집을 팔아봐야 대출금을 갚기에도 부족한 속칭 '깡통주택'까지 늘어나고 있다.

요즘 수도권 주택거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 더 얼어붙은 모습이다. 국토해양부와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은 20만241가구였지만 올해는 반 토막(11만5388가구)이 났다. 서울의 6월 아파트 거래량은 6602건으로 4년 전보다 60%나 줄었다.

경기도 분당신도시 A아파트는 2008년 2분기 40건이 거래됐던 것과 달리 올해는 15채가 팔리는 데 그쳤다. 서울 양천구 B아파트도 같은 기간 매매건수가 20건에서 8건으로 급감했다. 부동산114 김규정 본부장은 "수요자들이 급매물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도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5년 전 13억원에 팔렸던 분당 A아파트 164㎡형은 올해 7억6500만원으로 40% 이상 폭락했다. 분당 L공인중개사 박모 대표는 "5년 전 집값의 60% 이상 대출을 받아 구입했던 일부 수요자들은 지금 집을 팔아봐야 빚을 갚기에도 모자란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실거래가격(6월 기준)도 4억2468만원으로 4년 전 금융위기 때보다 평균 6300만원쯤 떨어졌다. 강남보다 강북지역 집값이 많이 빠져 서민층의 체감충격이 더 크다. 서울 강남·서초·송파구 등 강남3구의 평균 실거래가(6억5107만원→6억320만원)는 7%가량 떨어졌다. 반면 노원·도봉·강북구의 경우 실거래가는 4년 전 평균(3억2500만원)보다 24%나 하락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선임연구원은 "하우스푸어의 상당수가 경제 활동의 주축을 이루는 20~40대 직장인과 자영업자"라며 "내수 경제의 중심축인 중산층이 하우스푸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경기 침체의 골이 더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