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인 경기 침체 탓에 유통업계 전반이 '불황과의 지루한 싸움'을 계속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내 화장품업계는 이례적으로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은 불황이 깊어진 지난해도 원브랜드숍(특정한 한 개 브랜드만으로 상품을 구비한 패션 매장)에서만 38% 성장률을 기록하며 2010년보다 13% 성장했다. 업계는 올해도 성장세가 이어져 연말까지 9조7400억원대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한다.

왜일까? 역설적이지만 국내 화장품 업계를 성장시킨 주 요인 중 하나가 바로 불황이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비싼 해외 브랜드 제품에서 국산 화장품으로 갈아타는 소비자가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화장품 업계가 최근 몇 년간 두 자릿수 성장을 하는 동안 대형 백화점에서 유명 해외 브랜드 화장품 매출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추세다.

회사원 김민경(32)씨도 지난해 기초 화장품을 국산 제품으로 바꿨다. 김씨는 "대학 다닐 때부터 해외 브랜드만 썼는데, 최근엔 국산도 좋아져서 비싼 유명 브랜드와 차이를 못 느끼겠다"며 "주변에서도 비싼 해외 브랜드 대신 한국 화장품을 사는 친구가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국 화장품 성장의 또 다른 밑거름은 기술력이다. 16일 아모레퍼시픽은 '아이오페 에어쿠션 선블록' 제품이 2008년 출시 이후 현재까지 총매출 500억원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30초당 1개꼴로 판매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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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오페 에어쿠션 선블록'은 자외선 차단제와 파운데이션 기능이 합쳐져 간단하게 화장을 끝낼 수 있고, 미백 효과와 함께 얼굴에 바를 때 피부가 시원해지는 쿨링 효과까지 있다. 화장 위에 덧발라도 화장이 들뜨지 않도록 하는 에어펌프 기술과 공기를 포함한 차가운 액체가 날아가지 않도록 한 이중 용기 디자인 등으로 국내 특허 출원 21건, 국내 특허 등록 5건을 받았다. 강학희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장은 "고객의 여러 가지 요구 사항을 정확히 파악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제품"이라고 평했다.

마이크로칩이 내장된 아이디어 상품 '진동파운데이션'도 바쁜 출근 시간에 화장 시간을 단축해줄뿐더러 얼굴에 꼼꼼하게 발려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한경희뷰티는 지난해 출시한 진동파운데이션으로만 매출 400억원을 올렸다. 엔프라니는 세계적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김승원과 공동 작업을 통해 최근 진동파운데이션의 2세대 격인 '회전파운데이션'을 출시했다. '돌리며 눌러서 쓸어주기' 같은 기능으로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직접 화장해 주는 듯한 효과를 연출할 수 있는 제품.

업계는 "화장품 정보에 밝고, 기대치도 높은 한국 여성들 입맛에 딱 들어맞는 히트작을 잇따라 내놓은 점이 소비자들의 국산품 충성도를 높였다"고 분석했다.

'라네즈' 같은 국내 브랜드가 한류(韓流) 등의 영향으로 해외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누리면서 인지도가 높아졌다는 점 역시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의 성장 비결로 꼽힌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시장에서 2010년 대비 34% 성장률을 기록하며 매출 1909억원을 올렸다. 백화점 매장과 온라인 등에 진출한 브랜드 '마몽드'는 44% 성장세를 보였고, 지난해 베이징과 상하이 7개 매장에 진출한 '설화수'도 고급 백화점 중심으로 매장을 확장 중이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는 "아시아 시장에서 성장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중국 상하이 공장을 10배 확장하는 작업을 시작했다"며, "2020년까지는 매출 11조 규모의 세계 톱7, 아시아 1위 뷰티 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