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산 아파트 때문에 대출이자 300만원을 내 돈으로 내야 하니 피눈물이 나죠. 건설사 다닌게 죄도 아니고….”

벽산건설##에 다니는 A씨는 얼마 전 은행으로부터 사는 집이 가압류 될 것이란 통보를 받았다. A씨는 지난 2009년 회사의 강요로 일산 식사지구 내 8억원짜리 아파트를 5억원의 대출을 끼고 분양받았다. 회사에서는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야 더 잘 팔린다며 A씨를 설득했다.

처음에는 회사가 약속대로 이자를 내줬다. 하지만 지난달 벽산건설에 대한 법정관리가 시작되면서 대출 이자 지원이 끊겼다. A씨는 “이자를 못내니 신용카드 정지는 물론이고 사실상 신용불량자와 같은 상황이라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내가 왜 이 집을 떠안아야 하는지 억울하고 앞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 건설사들, 직원 상대로 미분양 떠넘겨

건설사들이 직원들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떠넘기고 있다. 주택경기 침체로 부도가 나는 중견 건설사들이 늘면서 모든 책임을 직원 개인이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사 앞에서는 벽산건설 직원 50여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벽산건설이 억지로 직원 108명에게 떠넘긴 식사지구 아파트 때문이다. 집회에 참석한 한 사람은 “총 500억 정도를 직원들 이름으로 대출받은 상황”이라며 “신한은행이 나서서 우리를 좀 살려달라”고 말했다.

벽산건설의 직원들이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사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풍림산업도 비슷한 상황이다. 직원들은 회사의 강요로 미분양이 발생한 부산 남천, 인천 청라, 충청 금강 지역의 아파트를 많게는 1인당 3가구, 적게는 1가구씩 분양 받았다. 약 400여명의 직원이 한 달에 200만~400만원의 이자를 내고 있다. 회사가 이자 지원을 하지 않으면서 신용불량자들이 속출했다.

풍림산업 관계자는 "현재 직원들이 떠안은 아파트는 싸게 분양하는 걸로 시행사와 이야기해 진행하는 과정"이라며 "개인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 선분양 시스템의 문제…대형 건설사들까지 가담

건설사들이 직원들에게 미분양 아파트를 분양받도록 하는 것은 불황기의 나쁜 관행이다. 직원을 동원하는 이유는 은행 대출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 후 계약률이 50%를 넘지 못하면 아파트를 짓기 위한 대출금을 은행이 회수하기 때문이다.

중견 건설사뿐 아니라 대형 건설사들도 직원 떠넘기기로 문제가 된 바 있다. 대기업의 경우 형식상으로는 직원들의 신청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대우건설은 2009년 지방 5개 아파트 사업장에서 미분양이 나오자 사내 공고를 통해 직원 922명을 모집해 회사가 1000만원씩 지급해 계약금을 내게 하는 식으로 허위 분양 계약을 맺은 적이 있다. 대우건설은 이를 통해 농협과 국민은행으로부터 2300억원이 넘는 중도금 대출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으로 대우건설 주택사업본부장과 시행사 대표 등 6명은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GS건설도 지난해 고양시 일산 식사지구에서 발생한 미분양 아파트 707가구를 직원에게 분양해 약 2000억원을 직원명의로 대출받은 바 있다. GS건설 관계자는 “강제 분양은 아니었고, 원하는 직원의 신청을 받아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벽산건설의 일산 식사지구 위시티 블루밍 모습

기업이 시킨다고 해서 모두가 분양을 받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국내 기업 문화 풍토에서 계약을 하지 않고 버티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모 건설사 관계자는 “위에서 하라고 누르고 모두가 눈치 보면서 하는 상황인데 나 혼자 안 하기는 쉽지 않다”며 “일부 사람은 친인척 이름으로까지 분양받아 가정불화로 이어진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불공정 관행은 아파트를 산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피해를 준다. 수요가 없는데도 직원을 동원해 분양이 잘되는 아파트인 것처럼 속이기 때문이다.

◆ 당장 나올 수 있는 대책 없는 게 더 문제

현재 뚜렷한 대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주택산업연구원의 김찬호 박사는 "개인 명의로 계약을 한 것이기 때문에 구제 방법이나 가능한 대책은 없다"며 "조사 과정에서 이러한 불공정 관행이 발견될 경우 경영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분양을 먼저 하고, 분양 대금과 은행 대출로 아파트를 짓는 후진적 선분양 시스템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실장은 “선분양 시스템 대신 후분양 시스템을 도입하면 해결될 수 있겠지만, 건설사들이 자금 여력이 없다”며 “각종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을 비롯해 은행은 아무런 위험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금융 환경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대책이 없다”며 “불공정 관행을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은 주택 경기를 살리는 것인데 이 또한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