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초청으로 북한에도 가봤죠.”

18일 서울 남산도서관 공원에서 만난 군터 호트로프씨(76·독일)는 이른바 ‘G바겐’으로 불리는 메르세데스벤츠의 플래그십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G클래스(G300 D·1988년식)’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고 있다.

18일 서울 남산도서관 공원에서 군터 호트로프씨가 자신의 G바겐 차량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89년부터 여행을 시작한 호트로프씨가 24년간 방문한 국가만 200여 개국. 전쟁 중이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물론 북한도 방문했다. 차량의 주행거리만도 80만km를 넘어섰다. 지구를 20바퀴 정도 돈 셈이다.

호트로프씨는 “파일럿으로 근무하면서 비행시간만큼 고도 0ft(지상)에서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면서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를 종단(縱斷)하면서 세계 일주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됐다. 지금은 여행이 끝나가는 과정으로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가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 34년간 200여개국 세계일주…“북한 가보니 벤츠 많이 보여”

호트로프씨의 세계 일주는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서울에서 속초국립공원을 거쳐 부산으로 이어지는 한국코스를 여행하고 부산에서 배편으로 일본 시모노세키(후쿠오카)로 이동할 예정이다. 이후 사할린, 러시아를 지나 독일로 돌아가면서 대장정의 세계 일주가 끝나게 된다.

호트로프씨의 G바겐이 북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벽화 앞에 서있는 모습.

마지막 독일의 결승지점에는 메르세데스벤츠 관계자는 물론 현지업계,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환영회가 있을 예정이다. 호트로프씨의 G바겐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에 영구보관되며, 그는 자신의 차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한 사람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된다.

호트로프씨는 “아프리카 오지의 강가에서 잠을 자다 먹을거리를 찾으러 온 하이에나를 만나 죽을 뻔 하기도 했고 사막에서 어깨가 빠져, 오도 가도 못하는 고통 속에 생사(生死)의 기로에 서보기도 했다”면서 “특히 탄자니아에서는 지진이 난 줄 알고 잠에서 깨보니 코끼리가 코를 차 모서리에 긁고 있는 등 수많은 에피소드도 있다”고 말했다.

호트로프씨는 2009년 북한에도 입국한 바 있다. 북한은 국방위원장의 초청이 없다면 외국인이 방북하기란 까다롭다. 그는 북한에 들어가기 위해 약 6개월의 수속절차를 거쳐, 차량과 함께 중국 대련항을 통해 북한의 남포항으로 입국했다.

호트로프씨는 "외국·민간인이 북한지역에서 자신의 차량을 주행한 것은 최초로 약 2주 동안 평양과 동쪽 해안도시를 여행했다"면서 "북한의 첫 느낌은 생각보다 많은 수입차에 놀랐고 당시 벤츠는 물론 폴크스바겐 심지어 벤틀리까지 봤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이후 한국 방문은 두 번째다. 그가 느낌 서울의 첫 느낌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얘기지만 교통지옥이었다. 호트로프씨는 “7년 전 한국에 왔을 때보다 서울에 큰 빌딩과 차들이 엄청나게 많아져 진짜 한국의 모습을 보기 위해 좁은 골목길을 찾아다니기도 했다”면서 “한강변의 화장실을 가봤는데 너무나 깨끗해 놀랐다. 러시아의 5성급 호텔보다 더 깨끗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호트로프씨는 기름값만 약 2억원(10만리터) 넘게 썼다. 그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NO HOTEL(호텔), NO RESTAURANT(레스토랑)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차량 뒷부분 공간에는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침대와 각종 생활도구가 보관돼 있다.

호트로프씨는 지난 16일 서울에 도착해서도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한국에 온 첫날은 성산대교 아래서 잠을 잤고 기자와 만나기 전에는 수도권 외곽의 캠핑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 벤츠의 플래그십 SUV ‘G바겐’…“34년만에 페이스리프트, 국내 출시 미정”

호트로프씨는 1998년 벤츠의 G바겐(G300 D)을 약 3만유로(약 4380만원·약 6만마르크)에 구입했다. 당시 독일 현지에서 폴크스바겐의 골프 최고급 사양이 1만8000마르크에 판매됐으며,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의 그랜저의 2.4L 가격이 2500만원이었다.

메르세데스벤츠가 새롭게 선보인 페이스리프트 'G바겐'

G바겐은 ‘Gelande(땅)’와 ‘Wagen(차)’의 합성어로 사막과 산 등 험로주행을 위해 개발된 차량이다. 이 차량의 원조격인 ‘G-5’는 세계 2차 대전에서 우수한 기동력으로 연합군의 진땀을 빼게 한 일화로 유명하다. 이후 연합군 역시 4륜구동 차량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개발에 나섰고 이는 랜드로버, 지프를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G바겐은 현재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를 통해 공식적으로 출시되지 않았다. 물론 병행수입 된 차량 일부가 국내에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34년간 약 21만5000대밖에 판매되지 않을 모델이라 흔히 볼 수 있는 차는 아니다. 더욱이 호트로프씨가 타고온 1988년식 ‘G300 D’ 모델은 국내에 단 한대도 없다.

호트로프씨가 여행한 국가들에서 기념촬영을 한 모습.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관계자는 “G바겐은 사막이나 높은 산길 등 험악로를 주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벤츠의 플래그십 차량”이라며 “독일 현지에서도 8만5300유로~26만4100유로(1억2450만~3억8543만원)에 판매되고 있는 고가의 모델로 국내 출시에 대해서는 내부적으로 검토 중으로 현재 미정이다”고 말했다.

G바겐은 1979년 1세대 모델이 처음 출시된 후 지난해까지 단 한 번의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도 없었다. 사실상 33년간 1세대 모델이 그대로 판매됐다. 하지만 올해 일부 디자인을 개선한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이달부터 독일 현지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호트로프씨의 G바겐이 아프리카 여행 도중 소떼에 갇혀있는 모습.

이날 호트로프씨에게 만약 자동차 기업에서 다른 신차를 제공한다면 어떤 차량을 타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는 한치에 망설임도 없이 단호히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라고 답했다.

그는 이어 “모든 차량은 주행거리가 20만km가 넘어서면 문제가 생기지만 G클래스는 80만km를 달려도 문제가 없었고 현재까지 엔진과 변속기를 단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면서 “또한 일부 위험국가를 입국할 때면 튀지 않는 차량이 유리하고 G클래스는 차체가 높아 모든 사물이 다 보여, 도심주행이 편하다”고 말했다.

배로 운송 중인 호트로프씨의 G바겐의 모습

마지막으로 세계 일주를 꿈꾸는 한국 사람들에게 조언해달라는 질문에 호트로프씨는 “세계 일주는 캠핑장과 캠핑장을 이동하는 관광여행이 아니다”면서 “장시간의 계획이 필요하고 모든 문제를 본인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사막과 정글 등 오지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