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은 도요타에 있어 여러모로 의미 있는 신차다. 우선 그동안 연비가 높고 정숙한 차량 개발에 매진해 왔던 도요타가 12년만에 처음으로 내놓는 스포츠카라는 점에서 그렇다. 86에는 도요타와 스포츠카라는 어울리지 않는 키워드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또 86은 1980년대에 출시, 마니아들로부터 인기를 얻은 도요타 ‘AE86 코롤라 레빈’을 계승하는 스포츠카다. 이 차량은 만화 ‘이니셜D’에 소개되면서 자동차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도요타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깊게 각인시켰다. 이름이 86으로 정해진 것만 봐도 AE86 후속작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듯 하다.

토요타가 12년 만에 출시한 스포츠카 '86'. 1980년대 출시한 'AE86'을 계승한 모델이다.

◆ 12년 만에 출시되는 도요타 스포츠카

86 시승은 15일 전남 영암 국제자동차경주장에서 진행됐다. 마침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면서 고속주행시 차량의 안정성을 평가해보기 안성맞춤이었다.

86을 처음 대면하면 일반 세단에 비해 훨씬 낮은 차체가 인상적이다. 고속으로 코너를 돌 때 안정감을 더하기 위해 지면에서 운전자 엉덩이까지 높이를 400㎜로 낮췄다. 스포츠카 포르쉐 ‘카이맨’ 시리즈보다 7㎜ 더 낮췄다는 게 도요타측 설명이다. 실제로 운전석에 앉아 차량 옆의 사람의 쳐다보면 시선의 높이가 허리춤 아래 정도 밖에 오지 않는다.

시동을 걸면 부드러운 엔진음이 운전자를 반긴다. 이는 운전 쾌감을 높여주는 ‘사운드 크리에이터’에 의해 극대화된다. 사운드크리에이터는 가속기를 밟았을때 발생하는 엔진의 ‘흡기음’을 엔진실에서 차량 실내로 전달해준다. 운전자가 가속기를 밟는 정도에 따라 다양한 엔진음을 즐길 수 있다.

'86' 2대가 서로를 마주보며 드리프트를 하는 모습.

◆ 90㎞ 속도로 코너링도 안정적

본격적으로 가속기를 밟고 주행을 시작하니 서스펜션의 역동적인 반동이 운전의 즐거움을 높여줬다. 서킷이라 노면이 매우 고른 상태인데도 지면의 상태가 하체로 느껴질 정도였다. 이는 짧은 구간에 놓여진 장애물을 통과하는 ‘슬라롬’을 재빠르게 빠져 나오는 원동력이 됐다. 서스펜션이 부드러우면 승차감은 좋겠지만 차량이 출렁이면서 고속으로 슬라롬을 통과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86의 첫 인상이었던 낮은 차체는 코너링에서 그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 시속 90㎞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코너를 돌아도 차체가 흔들리거나 불안감을 느낄 수 없었다. 180도로 돌아야 하는 ‘헤어핀’ 코너 역시 비가 내린 상태에서도 무난하게 통과했다. 등 부분이 움푹 패인 ‘버킷 시트’는 코너링 중에 운전자의 몸 중심이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단단하게 잡아줬다.

스포츠카라면 역시 순간적인 급가속 성능을 빼놓을 수 없다. 86은 배기량 1998㏄의 자연흡기 엔진으로 최고 출력 203마력, 최대 토크는 20.9kg·m(6400~6600rpm)에 달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데는 7.7초가 걸린다.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86과 자주 비교되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쿠페 2.0’이 7.2초만에 100㎞에 도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수치상으로는 다소 열세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주행에서는 반응속도가 굼뜨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86'의 계기반. 스포츠카 답게 아날로그형 속도계 외에 디지털 속도계가 따로 있다.

◆ 무난한 성능에 ‘착한’ 가격

도요타는 86을 출시하면서 ‘운전하는 즐거움’을 모토로 내세움과 동시에 “속도·마력 등 숫자로 경쟁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최고속도를 조금이라도 더 높이기 위해 안달하는 기존 스포츠카 브랜드와는 다른 전략으로 마니아들을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86을 시승해본 결과 다른 스포츠카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프리미엄급 차량에 크게 뒤지지 않는 성능에 3890만원(수동)의 가격은 스포츠카의 대중화를 이끌기에 충분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