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유통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중국 내 사업 파트너와의 갈등, 국내와는 전혀 다른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과거 월마트까르푸 등 글로벌 유통업체가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사업을 철수한 것과 비슷한 양상이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업체들은 영업이 부진한 매장을 처분하고, 현지화를 강화하는 등 중국 사업 체질 개선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최근 중국 베이징 최대 번화가인 왕푸징에 있는 '롯데인타이백화점(樂天銀泰百貨)'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했다. 2008년 세운 롯데인타이백화점은 첫해 172억원의 순손실을 낸 후로 작년까지 4년 동안의 누적 적자가 1100억원이 넘는다. 롯데백화점은 보유지분을 합작사인 인타이(銀泰)나 제삼자에게 매각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매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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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는 지난해 영업이 부진한 중국 매장을 대거 정리했다. 27개 점포 중 11개를 처분(지분매각 7개·자산매각 2개·영업종료 2개)해 현재는 16개 점포만 남아 있다. 중국 이마트는 지난해 중국에서 952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국내에선 승승장구하던 유통업체들이 중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롯데백화점은 베이징점 실적 부진의 이유를 '합작사와의 갈등'으로 설명한다. 롯데는 현지 유통 대기업인 인타이와 50대50 조인트벤처로 베이징 매장을 열었다. 유통업 특성상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데, 매장 운영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중국 회사와 일일이 합의를 해야 해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것.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매장 내 형광등 하나 갈아 끼우는 것도 중국 파트너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시노모니터 인터내셔널은 "롯데와 인타이의 조인트벤처는 다문화 충돌 현상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CJ오쇼핑은 2004년 중국 현지 상하이미디어그룹(SMG)과 각각 49대51로 자본금을 투자해 TV홈쇼핑업체 동방CJ를 설립했다. 동방CJ는 지난해 매출이 9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공했지만, CJ오쇼핑은 몇 차례 지분을 매각해 현재 지분율이 15%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CJ가 중국 파트너와의 갈등으로 힘들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에서 부진한 또 다른 이유는 현지화 실패다. 1997년 중국에 진출한 이마트는 상품 구성, 매장 운영을 '한국식'으로 고집하다가 실패를 봤다. 이마트는 현지화를 위해 작년 12월 중국 내 대형마트 사업에 정통한 대만 출신 제임스 로 부사장을 영입해 중국 사업 총책임자로 임명했다. 또 영업과 상품 개발도 현지 전문가들에게 맡겨 중국 소비자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노력 중이다.

한국 유통업체가 고기나 생선을 직접 만져보고 사는 중국인들은 특성을 모르고 비닐랩으로 포장한 신선식품을 진열했다가 실패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CJ제일제당은 중국 조미료 시장에서 고전하다가 2006년 '닭고기 다시다'를 출시해 성공을 거뒀다. 중국인들이 사용하는 육수는 대부분 닭고기로 만든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챈 성과다.

중국 내 최대 가죽전문쇼핑몰을 운영하는 하이닝중국피혁성유한회사 런유파(任有法) 대표는 5월 말 한국무역협회 초청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실패 사례와 시사점'에 대한 특강을 했다. 런 대표는 "한국 유통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하려면 '철저한 현지화(本土化)'와 '적합한 파트너 선택'이 필수"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