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매체 기사, '네이버'에 올라갑니다. 귀사 오너에 대해 기사를 하나 쓰고 있는데 참고해주세요."

"저희가 '다음'과 제휴된 거 아시죠? 제가 쓴 고발 기사가 귀사 이미지에 손상을 줄 것 같은데… 한번 만나실까요?"

한국의 기업 관계자들은 수시로 이런 전화를 받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포털과 제휴한 언론사'라며 광고나 협찬을 강요하는 사이비 매체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네이버와 제휴한 매체는 270곳 내외, 다음과 제휴한 매체는 600곳에 달한다.

한 기업 관계자는 "단 한 번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인터넷 매체나 잡지사라도 '포털에 기사가 노출된다'면서 협박해오면 '울며 겨자 먹기'로 협찬에 응하게 된다"고 말했다. 기업에 부정적인 기사가 일단 네이버·다음 등 포털에 올라가면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우리도 같은 기사를 쓴다"면서 압박해올 뿐 아니라 인터넷·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무작정 퍼나르기'까지 뒤따르면서 어느덧 사실인 것처럼 대중들에게 퍼져버리기 십상이다. 올 4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인터넷 매체는 3309개. 3년 전(약 1400개)의 2배를 훨씬 넘는다.

A기업은 지난해 똑같은 내용으로 이틀 동안 12곳의 인터넷 매체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기사를 다 써놓았다"거나 "기사를 올렸다"며 기사를 빼주는 조건으로 협찬을 요구한 것. 이 기업 관계자는 "한 매체가 네이버에 기사를 노출하자 다른 11곳이 '먹잇감을 찾았다'면서 득달같이 덤벼든 것"이라고 말했다. A기업은 "기사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네이버·다음과 제휴를 맺은 매체 7곳에 수백만원씩의 협찬금을 건네고 무마했다.

B기업은 한 인터넷 매체의 협찬 요구에 응하지 않자 수개월 동안 부정적 기사를 200건 넘게 쏟아내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그래픽=유재일 기자 jae0903@chosun.com<br>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C기업은 최근 한 인터넷 매체가 이 회사 사장에게 비리가 있는 것처럼 제목을 달아서 기사와 사진을 포털에 노출시켜 깜짝 놀랐다. 기사 내용은 제목과 달리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단순 불만이었다. 기업 관계자가 항의하자 "이런 기사 성격 잘 아시잖아요"라고 응답하면서 잠시 후 광고담당 직원이 전화를 걸어와 협찬을 요구했다. 곧이어 다른 곳에서 비슷한 기사를 쓰겠다는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C기업은 여러 곳의 매체에 협찬했다. A·B·C 기업이 겪은 것과 비슷한 사례들이 수백 건이 될 것이라고 기업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주요 국내 기업들의 단체인 한국광고주협회는 14일 포털 '다음' 측과 간담회를 열어 이런 피해를 막을 대책을 논의했다. 광고주협회는 작년 11월에는 포털 '네이버'와도 같은 자리를 가졌다. 광고주협회 임호균 사무총장은 "네이버·다음과 제휴한 후 포털을 숙주(宿主)로 삼아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가하는 협박에 기업들은 매달 수억원의 불필요한 광고·협찬비를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고주협회는 지난해 5개 매체를 '나쁜 언론'으로 선정했고, 올해도 추가로 25개 매체의 기사를 분석 중이다. 광고주협회 관계자는 "작년에 '나쁜 언론' 선정 이후 일부 매체가 기업들에 '함부로 우리를 거론하지 말라'고 겁을 주는 바람에 기업들이 피해 사례를 밝히는 데 주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피해에 대한 포털의 대응은 안이하고 무책임하다는 게 기업들의 토로이다. 포털은 "우리는 단순히 뉴스 유통업자일 뿐이고, 개별 기사에 대한 책임은 각 인터넷 매체들이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음의 이병선 본부장은 "기업들이 제기한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한다"면서도 "포털이 매체의 자격을 심사해 콘텐츠 유통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원윤식 홍보팀장은 "광고주협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부적격 매체를 지정해올 경우 참고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