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올 하반기에 신차를 내놓는 업체는 기아차(포르테 후속 'K3') 한 곳뿐이다. 토종 브랜드가 유례없는 신차 가뭄에 시달리는 동안, 수입차 연합군은 30여종이 넘는 신차를 쏟아내며 총공세를 퍼부을 태세다. 동력성능을 개선하고 디자인을 확 바꾼 신차는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구매를 견인하고, 경쟁 회사로부터 시장을 지키는 첨병 역할을 한다.

가뜩이나 수입차 업체들이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데다, 경쟁력 있는 신차까지 대거 쏟아내면서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의 입지는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 들어 5월까지 수입차의 국내시장 점유율은 9.9%. 이런 추세대로라면 연말에는 사상 최초로 연간 점유율 10%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국산 vs 수입차, '1대 10'

올 상반기 신차와 부분변경 모델을 합쳐 총 50여종의 차를 내놓은 22개 수입차 업체들은 하반기에도 신차 10대를 포함, 최소 32종의 차를 출시할 계획이다. 사상 최대 신차풍년이었던 작년의 출시규모(70대)보다 10% 이상 늘었다.

11일 아우디코리아가 출시한 신형 A5(앞). 하반기에는 렉서스의 신형 ES(빨간색)와 폴크스바겐의 뉴 파사트(맨 뒤)를 비롯한 30여종의 수입차가 새로 출시된다.

판매를 앞두고 있는 모델 중엔 폴크스바겐 파사트, 포드 퓨전, 닛산 알티마, 혼다 어코드, 렉서스 ES시리즈 같은 각사 대표 중형세단이 즐비하다. 또 도요타의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인 벤자와 벤츠 SL63 AMG 등은 국내에 경쟁자가 없는 차량들로, 신규 수요를 만들어낼 것으로 보인다.

K9·싼타페·렉스턴W 등 올 상반기 대여섯 종의 신차를 출시했던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하반기엔 완전히 손을 놓았다. 진정한 의미의 신차는 포르테 후속차량인 K3뿐이다. 기아차가 K7과 쏘렌토R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고, 르노삼성도 이미 나온 지 1년 이상 된 SM3와 SM5를 소폭 개선해 신차효과를 노릴 계획이지만 신차에 비해서는 신선도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관계자는 "지난해 현대·기아차가 그랜저·모닝·레이·i30·i40 같은 주요 신차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올해는 여력이 없다"면서 "내년은 돼야 신형 제네시스 등 파괴력 있는 신차가 준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쏘나타·그랜저급 최대격전 예고

수입차 업체들은 신차의 수적 우세뿐 아니라 상품성, 가격 측면에서도 국산차와 직접 경쟁이 가능할 만큼 완전히 무장했다. '기름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달고 있던 미국차 포드가 중형세단의 엔진을 종전 2.5리터(L)에서 1.6, 2.0L로 줄이는 대신 출력은 같게, 연비는 17% 높인 중형차 퓨전을 내놓는다. FTA로 관세 인하분만큼 가격조정 여력이 생겨 2000만원대 후반에도 출시가 가능할 전망이다.

독일일본 업체들도 일제히 미국산 중형차를 들여온다. 폴크스바겐의 미국형 파사트는 현지에서 쏘나타·캠리와 경쟁하기 위해 유럽형보다 실내 공간을 10㎝ 가까이 키워 만든 전략 차종이다. 폴크스바겐코리아는 넓은 실내공간을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들을 공략하는 데도 미국형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가격도 종전 4500만원대에서 3000만원대 후반으로 내려 동급 그랜저와 직접 경쟁을 벌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닛산과 혼다도 가까운 일본산 차량을 들여오는 대신, 가격인하 여력이 있는 미국산 차를 확보해 들여온다. BMW·벤츠·아우디 등 독일 고급차 업체들은 고성능 차들을 줄줄이 내놓으면서 프리미엄 시장에서 입지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대림대 김필수 교수(자동차학과)는 "최근까지만 해도 국산차와 수입차가 4000만~5000만원대 제네시스급에서 충돌했다면, 올 하반기부터는 전선(戰線)이 그랜저·쏘나타급까지 내려올 것"이라며 "국내 업체들이 수비에 치중하는 사이, 수입차의 공세가 절정에 달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