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한진중공업은 우리나라 노사(勞使) 분쟁의 상징이었다. 300일 넘게 이뤄진 타워 크레인 고공 농성과 직장폐쇄, 회사 진입을 시도한 버스시위대(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사태’를 무려 1년 가까이 이끌었다.

그랬던 한진중공업노동조합이 ‘노사 상생’을 꺼내 들었다. 한진중공업 노조는 4일 영도조선소 살리기와 선박 수주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열었다. 이날 김상욱 노조 위원장은 “조합원의 생존권을 확보하기 위해 협력과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며 사측은 신규 수주에 힘쓰고 노조는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에 동참해 일감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노조 스스로 이러한 변화를 ‘환골탈태(換骨奪胎)’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에서 조선업계는 노사 분쟁이 가장 심각한 사업장으로 꼽혀왔다. 1988년 시작된 현대중공업 사태는 울산 전역을 투쟁의 장으로 만들었고 급기야 육·해·공군이 투입돼 진압 작전을 펴기도 했다. 조선사 조합원들의 경우 조선소에서 공동생활을 하기 때문에 단결력이 높고 노동 강도가 높아 강경 노선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또 조선업 자체가 경기 상황에 예민하기 때문에 정리 해고로 인한 노사 갈등도 빈번하다.

그런데 이런 조선업계의 노조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이번에 새로 출범한 한진중공업 노조의 경우, 노사 상생을 기치로 내걸며 출범 일주일 만에 전체 조합원 705명 중 558명(79%)이 노조원으로 가입했다. 기존 강경 노선을 고수했던 민주노총 산하 노조보다 훨씬 더 많은 노조원을 확보한 것이다.

한진중공업뿐 아니다. 1990년대 전면 파업을 선언하며 노사 투쟁을 벌였던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최근 해외수주 물량을 가져오는데 적극 나서고 있다. 성만호 노조위원장은 지난달 대우조선해양이 노르웨이로부터 반잠수식 시추선 2기를 수주하는 계약식에 참석해 선주들에게 최고 수준의 시추선을 건조하겠다는 의지를 전달했다.

최근 조선업계 노조가 변화하는 것은 국내 조선사들이 봉착한 유례없는 위기에서 비롯됐다.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지며 조선업황이 열악해진 가운데 노사 갈등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은 것이다.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측의 일방적인 결정에 반대하는 노조의 활동은 언제든지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조선업계에서 벌어진 노조 활동은 회사의 어려움은 뒤로한 채 지나친 이익 보장을 요구하거나 정치적인 이념 논쟁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노조는 항상 사측을 견제하며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해야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사측과 협력해 돌파구를 마련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조선업계가 수주 가뭄과 선가 하락에 허덕이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 노조의 변화가 큰 힘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