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김모(43)씨는 3년 전 가입했던 실손의료보험〈키워드〉을 최근 갱신했는데, 새 보험료 청구서를 받아 보고 깜짝 놀랐다. 월 보험료가 1만5470원에서 2만4360원으로 57%나 올랐기 때문이다.

실손의료보험은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한다. 그런데 보험료가 3년마다 이런 식으로 오른다면 퇴직 후인 55세 땐 월 14만8000원, 61세 땐 월 36만4800원을 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소득이 없는 퇴직 후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액수다. 김씨는 "'100세까지 의료비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는 광고만 믿고 가입했는데 이제 보니 속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금융소비자연맹에 따르면 실손의료보험 관련 민원이 작년의 2배인 월 120건씩 접수되고 있다.

'보험료 폭탄'에 신음하는 가입자들

2135만명에 달하는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들이 급등한 보험료 폭탄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각 보험사는 인상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본지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실손의료보험 평균 인상률은 44%에 달했다.

문제가 잉태된 것은 2009년이었다. 당시 금융 당국은 의료비를 100% 지원하는 실손의료보험이 불필요한 진료를 남발하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2009년 10월부터는 의료비 90%만 지급하는 상품만 팔도록 했다.

그러자 손보사들은 "지금처럼 의료비를 100% 지원하는 상품에 미리 들어놓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손해 보는 것"이라며 시한부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한 해 만에 가입자가 939만명에서 1502만명으로 60%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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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문제가 터졌다. 가입자가 폭증하면서 보험사가 내줘야 하는 의료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2009년 중 수입 보험료는 4920억원 늘어난 데 비해 보험사가 지급한 보험금은 6076억원 증가해 적자가 1156억원 생겼다. 의료비가 100% 보장되기 때문에 가입자들이 필요 이상 의료 서비스를 받은 것도 중요한 원인의 하나였다.

손보사들은 작년 말 기준으로 보험료 100원을 받아서 보험금 114원을 내주는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자산 운용 수익률을 높이거나 사업비를 줄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손실의 대부분을 보험료를 인상해 벌충하려고 한다. 50% 안팎의 보험료 인상률이 그 결과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손보사의 엉터리 상품 설계가 문제를 낳은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상명대 김재현 교수는 "보험사가 상품 설계 단계에서 보험금을 지급할 확률을 너무 낮게 평가한 잘못이 있었다"고 말했다. 손보업계 관계자도 "생명보험사가 한 달 보험료 1만원에 내놓는 상품을 손보사는 6500~7000원에 팔았다. 당장 보험을 많이 팔 생각이 앞서 향후 보험금 지급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말했다.

보험료 인상 가능성 안내 부실

문제는 또 있다.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들은 보험을 3년 단위로 갱신할 때마다 보험료가 얼마나 오를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상품 설명서엔 "갱신 때마다 보험료가 변동될 수 있다"는 문구만 있었을 뿐 보험료가 어느 정도 인상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금융 당국이 뒤늦게 2009년 10월 이후부턴 보험료 인상률 예상표를 공시하도록 조치했지만, 예시된 인상률도 실제 인상률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앞서 예로 든 김씨가 가입한 상품 의 설명서엔 첫 갱신 때 보험료 인상률이 최저 14%, 최고 37%로 돼 있어 실제(57%)와는 거리가 멀다.

김씨는 "나이가 들면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많아져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는 건 인정하지만 실제 인상률이 예상의 최대 4배 이상이나 된다는 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국 "실손의료보험 전면 수술"

금융 당국은 실손의료보험의 설계, 판매, 공시 등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보험료 인상 주기를 3년에서 1년으로 단축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보험금 지급 확률을 너무 낮게 잡아 상품을 설계한 잘못을 해마다 개선할 수 있고, 보험료 인상률에 대해 소비자들이 느끼는 저항감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정보 공시를 강화해 인상률 예시를 실제 인상률에 가깝게 하는 방안,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보험료가 싼 보험사로 갈아탈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금융위원회 이윤수 보험과장은 "이르면 이달 중에 실손의료보험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손의료보험

보험 가입자가 실제로 부담한 의료비를 보험 가입 금액 한도 내에서 보장하는 상품.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급여 또는 의료급여법에서 정한 의료급여 중에서 본인 부담금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치료비의 90%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장한다. 2009년 10월 이전에는 100%를 보장하는 상품도 판매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