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포스코 정준양 회장 선임 당시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정 회장의 경쟁자인 윤석만 사장(현 포스코건설 고문)을 사찰한 사실이 최근 검찰수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이를 계기로 '포스코 회장 선임과정에 정치권 외압이 있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뇌물수수 혐의로 최근 구속된 박영준 전 차관은 당시 총리실 국무차장이었다.

2008년 11월 당시 정준양 포스코 사장은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그랬던 그가 2개월여 뒤인 1월 29일 포스코 회장에 선임됐다. 윤석만 마케팅·관리담당 사장이 이구택 회장의 후임으로 거의 굳어지던 상황이었지만, 두 달 사이 대반전(大反轉)이 일어난 것이다. 윤 사장은 즉각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그의 반발은 임기 1년을 남긴 이구택 회장의 갑작스러운 퇴임과 맞물리며, "정준양 회장 선임 과정에 정치권의 외압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박태준 라인은 안 된다"

2008년 연말부터 이구택 회장 입지는 급격히 흔들렸다. 특히 검찰이 2005년 포스코 세무조사 당시 '포스코가 국세청에 대해 로비한 의혹이 있다'며 조사에 나서자, 퇴진은 기정사실화됐다. 이 회장을 겨눈 수사라는 것이었다. 항간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 회장이 포항에 지역구를 둔 이상득 의원을 홀대했다가 찍혔다' '포스코의 좌파 시민단체 지원금이 광우병 촛불시위의 활동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는 등 소문이 돌았다.

(사진 왼쪽부터)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윤석만 포스코건설 고문, 이구택 포스코 고문, 정준양 포스코 회장.

2008년 연말까지만 해도 윤석만 사장이 후임 회장으로 유력했다. 포스코 서열 2위인 데다 창업 주역인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다. 최종 확인은 어렵지만 박 명예회장은 윤 사장에게 "앞으로 큰일을 할 테니까 준비하라"고 말했고, 이 회장도 "윤 사장 당신이 후임"이라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09년 들면서 분위기가 180도로 달라졌다. 일부 전·현직 포스코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구택 회장은 2009년 1월 초 윤 사장에게 전화 걸어 "차기는 당신이 아니라 정준양 사장"이라고 말을 바꿨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윤 사장이 이에 강력 반발하며 이구택 회장과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는 후문.

당초 후임 회장으로 강만수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 같은 현 정부 실세들이 거론됐다. 그러나 박태준 명예회장이 "외부 인사를 선임하면 반박 성명을 내고 일본으로 떠나겠다"고 강력 반발하자, 정부가 외부인사 카드를 접는 대신 박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덜한 정준양 사장을 회장으로 낙점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영준 전 차관이 박 명예회장과 이구택 회장, 정준양 사장, 윤석만 사장 등을 잇따라 접촉하며 정부의 의중을 전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 포스코 전직 고위 관계자는 "정부는 포스코에서 박 명예회장의 입김이 약해지길 원했고, 그와 가까운 윤 사장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말했다.

이구택 회장, 후임 정준양 지지

2009년 1월 포스코 회장 선임을 위한 CEO 추천위원회가 구성됐다. 당시 일부 사외이사들은 이구택 회장이 비공개회의 자리에서 "정준양 사장이 후임 회장으로 적임"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고 있다. 한 인사는 "평소 같으면 전임 CEO가 후임자를 지명하는 게 문제가 안 되겠지만 정치권 외압설이 나돌던 그때엔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윤 사장도 강력 반발했다. 박태준 명예회장과 가까운 퇴직임원들도 윤 사장을 지원했고, 윤 사장은 CEO 추천위원회 회의 도중 신상발언을 통해 정부 외압설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포스코 관계자는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윤 사장과 가까운 인사들은 정 사장의 비리 연루설을 투서 등의 형태로 정치권과 언론에 흘린 것이 사실"이라면서 "포스코 감사실이 정 사장 비리설을 조사했고 '사실무근'인 것으로 CEO 추천위원회에 보고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