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수 성균관대 인터랙션 사이언스 UI

손바닥만 한 아이폰으로 촉발된 스마트 시대가 산업 전반의 대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스마트 시대의 핵심경쟁력은 무엇일까? 소프트웨어일까, 하드웨어일까? 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애플·구글·페이스북·안드로이드 OS(운영시스템) 등 스마트 산업의 리더는 왜 미국에만 있을까? 노키아·소니·코닥 같은 전통 강호들은 왜 줄줄이 몰락할까?

그 해답 중 하나를 '콰드로버전스(quadrovergence·4개의 융합이라는 뜻)'에서 찾을 수 있다. 콰드로버전스는 인프라·하드웨어·소프트웨어·서비스 등 4개가 융합된 것으로, 그 정점의 가치는 바로 콰드로버전스가 이뤄내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User Interface)와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이다. 미국은 사용자 경험 기술을 핵심가치로 하는 콰드로버전스 최강국으로서 스마트시대의 세계 IT를 호령하고 있다. 이는 애플을 통해 볼 수 있다. 애플은 삼성과 LG에서 부품을 조달해 아이폰을 조립하고, 생산은 중국에서 한다. 하지만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만은 미국의 애플 본사에서 직접 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뛰어난 정밀 하드웨어와 부품, 인프라 기술,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고 있지만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이 취약해 일본 IT는 침몰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용자 경험 기술에 더욱 취약하다. 소프트웨어 기반도 약하지만, 사용자 경험 기술을 디자인 역량과 동일시하는 게 지금 우리나라 IT 산업의 현실이다.

사람처럼 대화하는 시리의 출현

이런 우리 앞에 아이폰 4S를 통해 시리(Siri)가 나타났다. 시리는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 기술이며, 인문학적 스토리텔링을 적용한 최초의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물론 시리가 최초의 인공지능 기술이 아니다. 이미 IBM의 왓슨 같은 인공지능 컴퓨터는 미국에서 유명한 제퍼디 쇼에 출연해 우승하기도 했다.

시리의 홍보 동영상을 보면 "이번 주말에 샌프란시스코가 추울까?"라고 물으면, 시리는 "그렇게 춥지는 않아, 16도로 내려갈 거야"라고 말한다. 마치 사람처럼 대충 말한다. 이어서 "나파밸리는 어때?"라고 물으면, 시리는 "마찬가지야"라고 답한다. 시리는 샌프란시스코가 도시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추울까'라는 단어로 날씨를 묻고 있음을 이해한다. 이어지는 대화에서 '나파밸리는 어때?'라는 물음에 대해 시리는 이전에 날씨에 관한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고는 날씨에 관한 답을 대략적으로 내놓는다.

그런데 시리가 더욱 무서운 이유는 인문학의 스토리텔링을 구현하였기 때문이다. 한 네티즌의 경험을 보면 시리에게 "나랑 결혼할래?"라고 물었더니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어때?"라고 시리가 답한다. "인생이란 뭘까?"라고 물었더니 "여러 증거를 종합해 보면 초콜릿인 것 같아"라고 한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고 할까?

미래 자동차·로봇·TV는 가족처럼 친근해진다

시리는 단순한 인공지능을 넘어 기계에 인문학적 삶의 특성을 담아내는 인공생명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시리를 사용한 사람들에게서 "정든다" 혹은 "얘 짜증 나"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무서운 이야기다. 인터페이스에 감정을 이입시키는 사용자경험 기술은 시리가 가진 무서운 잠재력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 기술자들은 전자제품을 만들 때 훌륭한 기능을 구현하려 하지, 정드는 인터페이스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시리의 핵심 경쟁력은 단순히 음성인식이나 자연어 처리가 아닌, 인문학적 사용자 경험이다.

140자까지 글을 올릴 수 있는 텍스트 중심의 트위터(사진 왼쪽), 글과 사진을 편리하 게 올릴 수 있는 페이스북(가운데),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사진을 편집해 공유하는 인스타그램(오른쪽)은 사용자 경험을 활용한 스마트 시대의 대표적 성공 케이스다.

이런 시리가 자동차, 로봇, 가전과 융합하는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실제로 메르세데스 벤츠의 A 클래스 차량에는 곧 시리가 사용될 예정이다. 로봇의 브레인 역할을 시리가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공연장에서 춤만 추던 전시성 로봇이 사람들과 다정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있다. 스마트 TV에 시리가 사용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스마트 TV는 채널만 백여개에 이르고, DVD플레이어 역할도 하고 인터넷과 페이스북도 가능하다. 게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리모컨이 복잡해졌다. 리모컨에는 수십여개의 복잡한 버튼은 기본이고 심지어 키보드도 있다. 웬만한 할머니는 TV를 켜지도 못한다. 이런 상황에 시리가 있다면 "재미있는 영화 찾아줄래?"라고 간단히 물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평소 많이 보던 장르의 영화를 소개해 줄 것이다. 어쩌면 시리가 먼저 "무한도전 볼래요?"라며 필자가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가족 같이.

사용자 인터페이스·경험 기술을 산업의 핵심경쟁력으로 이해해야

최근 민관이 힘을 모아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에 발벗고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국내 기업들의 사용자 경험 기술 역량은 취약하다.

삼성전자만이 상당한 사용자 인터페이스·사용자 경험 기술 진척을 이뤄내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공개한 차세대 스마트폰 '갤럭시 S3'의 경우 눈동자를 인식해 스마트폰을 보는 도중엔 화면이 꺼지지 않고, 음성인식 기능이 장착돼 시각, 날씨 등을 말로 물어보면 시계 아이콘이나 태양·구름 아이콘 및 온도로 답해주고 있다.

IT컨설팅회사인 가트너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경험을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산업에선 아직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인간 본성의 가치, 또는 사용자 경험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인지과학을 육성해야 한다. 사용자 경험을 창시한 미국의 인지과학과, 최초로 사용자 경험 부서를 설치했던 애플의 성공을 예사롭게 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