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지점장이 됐을 땐 뛸듯이 기뻤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죠. 말 그대로 '지점의 장'이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살얼음판을 걷는 인생이 될 줄 몰랐습니다. 하루하루 핑계대고 사과하는 게 일과입니다"

한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 소속의 김모 지점장 얘기다. 그는 은행에 들어간 친구들이 부럽다고 한다. 은행이나 증권사나 영업 스트레스는 마찬가지지만 은행은 그래도 안정적이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김 지점장은 툭하면 물갈이 되는 지점장의 '파리 목숨'을 가까이에서 여러번 봤다. 그 중 일부는 물려받은 재산을 팔고, 집을 팔면서(그 자산은 대부분 물타기용으로 들어갔다) 가까스로 버티다 쫓겨나듯 자리를 옮겼다.

그들의 직업을 앗아간(?) 것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유럽 국가들의 신용등급 강등,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이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적수는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다"라고 농담하는 지점장도 있었다.

요즘 지점을 힘들게 하는 것은 삼성전자와 거래 감소다. 삼성전자를 들고 있지 않으면 수익률이 안나온다. 고객들은 "왜 안샀냐?"고 아우성한다. 거래 감소는 더 심각하다. 지점에선 계속 사고 팔아야 하는데 정치인 테마빼고는 거래가 살아나질 않는다. 제때 매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 지점장이 보기엔 돈 좀 만져본 지점장은 극소수라고 한다. 집은 물론이고 차도 없는 지점장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차를 빌려 골프채를 싣고 주말에 영업을 뛴다. 아내에게 목돈 한번 쥐어준 적 없으면서 고객 관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럭셔리 인생'을 즐겨야 하는 그들이다.

물론 잘 나가는 사람도 있다. K증권사에 다니는 한 부장급 직원은 경쟁사에 좋은 조건으로 이직할 예정인데, 30대 중반의 나이에 강남권 요직의 지점장을 맡을 예정이다. 수익률이 좋다고 소문난 덕에 충성도 높은 고객이 많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얘기다. 아무리 기업 분석을 잘하고 증시 전망을 잘해도 어차피 사람이 하는 일이다. 수수료와 세금을 꼬박꼬박 지불하면서 수익을 꾸준히 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일반인이 느끼기엔 증권사 지점장이나 은행 지점장이라고 하면 '잘 나간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증권사 지점장은 은행 지점장보다 연배가 한참 어리다. 젊어야만 공격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지점장 직함을 달고 있다보니 주변에서 부러움 섞인 시선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괴롭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도 적잖다. 올초에도 창원시의 50대 증권사 직원이 스스로 세상을 떴다.

지점장들에게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물어봤다. 고객의 기대치가 높은 게, 욕 먹는 게 힘들단다. 한 지점장은 이렇게 말했다. "펀드는 은행이 제일 많이 팔고 운용(매매)은 자산운용사에서 합니다. 그런데 꼭 수익률이 안 나오면 증권사에 와서 욕을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