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차장 박모(42)씨는 최근 한 보험사를 찾아가 은퇴 설계 컨설팅을 받았다.

입사 후 17년째 붓고 있는 국민연금, 11년 전 중간정산한 뒤로 별 신경 쓰지 않고 있는 퇴직연금, 7년 전 가입해 월 20만원씩 넣고 있는 개인연금이 노후 준비의 전부다.

'국민연금 125만원, 퇴직연금 103만원, 개인연금 25만원.' 보험사 직원은 65세 이후 박씨가 받을 수 있는 연금이 월 253만원이라고 계산해 줬다. 하지만 보험사의 계산엔 물가 상승이란 변수가 빠져 있다.

국민연금에서 제시한 125만원은 현재가치로 125만원이다. 연금을 받기까지 23년간 물가가 아무리 오르더라도 지금 125만원의 값어치에 상당한 돈을 주겠다는 의미다. 결국 65세 때 실제로 받을 돈은 125만원이 아니라 물가상승률을 더해 훨씬 커질 것이다.

그러나 퇴직연금 103만원과 개인연금 25만원의 경우는 현재가치가 아니라 23년 뒤에 실제로 받을 돈을 나타낸다. 현재가치로 환산하면 물가만큼 줄어들게 된다. 앞으로 물가가 매년 3%(한은 목표치)만 오른다고 가정해도 23년 뒤 받을 수 있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현재가치는 각각 52만원과 13만원으로 쪼그라든다.

결국 박씨의 예상 은퇴 월급을 현재가치로 따지면 국민연금을 포함해 월 190만원이 된다. 그가 노후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생활비인 월 300만원에 훨씬 못 미친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은 국민·퇴직·개인연금으로 은퇴 직전 소득의 평균 51%밖에 충당하지 못한다. 거기에 고민이 하나 더해졌다. 연금상품의 수익률은 형편없고, 수수료는 턱없이 비싸다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렇다고 연금을 깰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하소연했다. 노후 대비에 꼭 필요한 몇 가지 상식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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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국민연금 임의가입이 1순위 선택

위의 사례에서 보듯 국민연금은 물가가 올라도 받는 연금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 연금상품에 비해 월등히 유리하다.

물론 직장인을 비롯해 소득이 있는 1900만명은 이미 의무적으로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있다. 하지만 임의가입이라는 제도를 활용하면 일정한 소득이 없어 의무가입 대상이 아닌 부인도 국민연금에 추가로 가입할 수 있다.

198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최근 가입자가 급증하고 있다. 2009년에는 한 달 임의가입자가 1825명이었는데, 올해는 그 수가 한 달에 1만4728명으로 8배 늘었다. 지난해 임의가입자 중 여성이 10만271명으로 81%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35세 전업주부가 국민연금을 월 30만원씩 20년 동안 부은 뒤 65세부터 연금으로 받는다면 '현재가치'로 월 57만2000원을 받을 수 있다.

같은 조건으로 A생명의 변액보험 상품에 가입할 경우 연 6% 수익률을 거둔다는 가정에 따라 65세부터 월 83만6000원 정도를 받을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가치가 아니라 받는 시점의 돈이다. 물가가 연 3%로 오른다고만 가정해도 현재가치로는 월 34만4000원밖에 안 된다.

다만 국민연금 임의가입으로 한 달에 넣을 수 있는 돈은 33만7500원을 넘지 못한다.

②개인연금 연 400만원만 넣고, 해약은 금물

작년 한 해 동안 개인연금 수익률은 생명보험사가 연 3.9%, 은행이 연 3.1%로 물가(4.0%)에 못 미쳤다. 하지만 수익률이 아무리 저조해도 해약은 금물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1년에 40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 때문에라도 개인연금보험은 매력적인 상품이다. 연봉 5000만원의 직장인의 경우 세금 혜택만 해도 40만원이 돼 수익률을 10%포인트 올리는 효과가 있다. 연봉이 높을수록 세율이 높고 돌려받을 수 있는 세금도 많아 혜택이 최고 30%포인트까지 커진다.

해지에 따른 불이익도 크다. 그동안 받은 세금 혜택을 모두 돌려줘야 하므로 5년 안에 해지하면 부은 돈의 24.2%, 5~10년에 해지하면 22%를 떼야 한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개인연금은 딱 400만원까지만 들고, 10년 이내에는 절대 깨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③저소득자는 개인연금 신중히 가입

저소득자는 세율이 낮아 개인연금 가입에 따른 소득공제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다. 연봉 3000만원인 직장인이 개인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소득공제 효과는 연 20만원 안팎이다. 하지만 보험사는 개인연금 가입 후 7년까지 수수료를 매년 8~10% 뗀다. 이 경우 소득공제 받는 금액보다 수수료가 더 많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④개인연금 연말에 몰아서 내라

개인연금 세금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한도가 연간 400만원인데, 그 400만원을 언제 내도 관계없다. 보험사에 떼이는 수수료를 줄이려면 매달 내는 돈은 최소로 줄이고, 연말에 많이 내는 게 유리하다.

B생보사 개인연금의 경우 한 달 33만3333원씩, 연간 400만원을 넣으면 수수료로 모두 41만6800원이 나간다. 이 상품은 처음 7년 동안 낸 보험료의 10.4%를 수수료로 떼 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를 들어 매월 11만1112원씩 넣고, 연말에 한 번 266만6656원을 몰아서 넣으면 수수료가 20만5600원으로 뚝 떨어진다. 이 상품의 경우 연말에 추가로 낸 돈엔 수수료율이 2.5% 적용되기 때문이다.

⑤변액연금은 은행·증권사에서 가입

12%에 달하는 변액연금보험 수수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면 은행·증권사에서 가입하는 게 낫다.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보험회사를 통해 가입하는 것보다 은행에서 가입하면 수수료율이 10% 정도로 내려간다"고 말했다.

⑥퇴직연금, 수수료 깎아달라 협상

은행들이 퇴직연금으로 받은 돈의 92%를 정기예금으로 굴리면서도 0.6~0.8%의 수수료를 뗀다는 보도가 있었다.

은행이 별 노력 없이 높은 수수료를 받는 것이므로 네고를 통해 낮출 여지가 있다. C은행 퇴직연금 담당자는 "금융회사 퇴직연금 유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기업 퇴직연금 담당자들이 수수료율을 낮춰 달라고 요구하면 조금이라도 내려갈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