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보잉이 20세기 마지막에 개발한 B777 항공기는 무게 절감을 위해 전체 구조물의 12%를 가볍고 튼튼한 신소재인 탄소복합소재를 사용했다. 무게는 강철의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강도(强度)는 10배인 첨단소재다.

지난해 운항을 시작한 보잉의 B787은 항공기 구조물의 50%를 탄소복합재로 대체해 더 가벼운 몸으로 만들었다. 요즘 항공기들은 무게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과감하게 바꾸고 있다. 공기 저항을 조금이라도 줄여 연료 효율성(연비)을 높이기 위해서다.

고유가가 계속되고 있는 요즘 항공업계는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유류비가 전체 비용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항공업계 특성상 연비가 기업 이윤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제작사는 보다 가볍고, 공기저항이 작은 항공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하고 있다. 항공사 또한 식기 쟁반마저 가벼운 것으로 바꾸는 등 다양한 '군살빼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날개 끝을 접어라…치열한 연비 경쟁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항공기 날개 끝에 붙이는 장치인 윙렛(winglet)의 대중화다. 윙렛을 달면 공기의 흐름을 개선해 와류(渦流)현상을 감소시킨다. 와류현상은 날개 위와 아래 면의 압력 차로 인해 날개 끝에서 공기가 소용돌이쳐 저항을 크게 만드는 현상이다. 윙렛은 이를 감소시켜 연료절감 효과를 내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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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윙렛은 매우 작은 크기였고, 모양도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료효율을 높이는 역할이 미미했다. 최근에는 가벼우면서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 수 있는 탄소복합재의 발달로 성능을 극대화한 윙렛이 선보이고 있다.

대한항공이 최근 독자 개발해 양산하는 '샤크렛(sharklet)'이 대표적이다. 폭 1.6m, 길이 3.3m의 샤크렛은 에어버스 A320 항공기의 주 날개 끝 부분에 장착되는 윙렛이다. 상어(shark) 지느러미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샤크렛을 단 A320은 비행시험 결과 기존 항공기 대비 3.5%의 연료절감 효과를 나타냈다.

대한항공은 지난 8일 첫 제품을 에어버스사에 납품하고 본격적인 양산에 들어갔다. 2010년 국제 경쟁입찰에서 일본·프랑스·독일 등의 유명 항공기 제작사들을 제치고 사업을 수주한 지 2년 만이다.

샤크렛은 고도 기술이 요구되는 부분으로 설계·개발·제작·시험·인증에 이르는 전 과정을 대한항공이 독자적으로 수행했다. 항공기 제작부문에서도 국내 기업의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고 업계는 평가한다. 대한항공은 향후 샤크렛 생산으로 약 1조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B787의 날개 끝 부분 장치인 '레이키드 윙팁(raked wing tip)' 역시 연료 효율을 높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비스듬히 휘어진 이 날개 끝단 장치는 항공기 날개 길이를 늘여 비행기가 떠오르게 하는 양력(揚力)을 키워준다. 소재는 탄소복합재를 사용해 무게를 줄이고 연료 효율성을 높였다.

'코 수술'한 비행기, 누드 항공기까지 등장

항공기가 가장 먼저 공기와 접촉하는 부분인 '노즈 섹션(Nose Section·항공기 조종석이 있는 앞부분)'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노즈 섹션의 각진 부분을 없애 역학적으로 공기가 부드럽게 흐르게 만들어 연료 절감에 한몫하는 쪽으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 엔진의 공기 흡입 부위도 유선형 모양을 적용해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만들어 공기저항력을 감소시켰다. 항공기 날개 두께도 축소하는 등 공기저항을 줄이려는 노력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고유가는 한 때'누드 항공기'까지 등장시켰다. 장거리 운항노선이 많은 캐세이퍼시픽의 B747 화물기는 조종실, 꼬리 날개, 동체의 회사명과 로고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의 페인트칠을 모두 벗겨 냈다. 이렇게 벗겨 낸 페인트의 무게는 약 200㎏. 성인 남자 승객 세 명의 무게에 해당하며 1년 동안 비행기 한 대당 약 2억원의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대한항공은 연간 31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137억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한다"며 "항공사들의 최우선 과제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