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를 맞아 은퇴 후 40년을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개인연금·퇴직연금 같은 연금상품은 국민연금과 더불어 노후생활의 최종 안전판이다. 국민 1100만명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각종 연금상품에 돈을 넣고 있는 이유다. 내 연금은 내 노후를 의존해도 될 만큼 잘 관리되고 있을까, 금융회사들은 내 돈을 자기 돈처럼 정성 들여 굴려 주고 있을까. 시리즈로 살펴본다.

570만명이 가입하고 적립액이 68조원에 이르는 개인연금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소비자원은 247만명이 가입한 변액연금보험 상품 중 90%의 10년간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에 못 미친다고 발표, 충격을 준 바 있다. 연금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를 뿌리째 흔드는 뉴스들이다.

◇물가상승률보다 낮아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6개 시중 은행이 운용하는 전체 21개 개인연금신탁 채권형 상품의 지난해 평균 수익률이 연 3.07%에 불과해 물가상승률인 4.0%에도 못 미쳤다. 수익률이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인 3.68%를 넘어선 상품은 하나도 없었다. 생명보험사의 개인연금보험 평균 수익률도 연 3.9%(금융감독원 자료)에 그쳐 실적이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이처럼 수익률은 형편없는데도 은행들은 적립액의 0.9%가량을 수수료로 떼 간다. 수익의 3분의 1가량을 수수료로 떼는 셈이다. 지난해 은행들은 11조8000억원의 개인연금 상품을 취급, 1000억원 정도의 수수료를 챙겼다.

반면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채권형 펀드의 수수료는 0.45%로 은행 수수료율의 절반 정도이지만 지난해 수익률은 연 5.5%로 은행 개인연금의 두 배에 육박한다.

같은 돈을 펀드 대신 은행 개인연금에 맡기는 바람에 투자자들은 수익은 반 토막, 비용은 두 배로 지급하고 있는 셈이다. 2008년부터 4년간 연평균으로 보면 은행 개인연금 수익률이 3.7%로 물가(3.6%)는 간신히 웃돌았지만 채권형 펀드의 수익률 6.8%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개인연금은 연간 400만원까지 소득공제 혜택 때문에 절세 효과로만 최대 연 10%가량 수익을 누릴 수 있어 세후 수익률로는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그러나 이는 금융회사들의 낮은 수익률과 높은 수수료를 납세자가 낸 세금으로 메워 주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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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볼모로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

직장인 최모(39)씨는 최근 A보험사에서 보낸 개인연금 운용보고서를 받아보고 크게 실망했다. 퇴직 후를 대비해 지난 2005년부터 월 20만원씩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꼬박 1660만원을 부었는데 적립된 돈은 고작 1818만원. 연 수익률로 환산해보니 2.6%밖에 되지 않았다. 최근 10년간 평균 물가상승률(3.2%)에 훨씬 못 미친 것이다. 최씨는 "지금 해약하면 세금을 왕창 내야 하니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연금신탁의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금융회사가 수수료를 너무 많이 떼는 데다 자금 운용 실력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개인연금은 대부분 2000년대 초반에 설정이 됐는데, 당시엔 운용사 간에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수수료가 높게 책정됐고, 그때 정해진 수수료율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은 이렇게 높은 수수료를 떼고 남은 돈 대부분을 국·공채, 금융채(64%)나 예금·적금(18%)으로 굴렸다. 안전하고 신경 쓸 필요 없지만 수익이 낮은 상품에 몰아넣은 것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세금 때문에 10년간 해지하지 못하는 고객들을 볼모로 '바가지 수수료' '안전빵 투자'를 통해 '땅 짚고 헤엄치기'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개인연금에 가입한 사람이 그동안 자신이 낸 돈이 얼마나 수익을 올리고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보험사·은행·자산운용사가 각각 공시(公示)를 하지만 사업비·수수료를 빼고 실제 투자한 액수가 얼마이고, 현재까지 수익률이 얼마인지 좀처럼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