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세련된 것!”

지난해 7월 만난 피터 슈라이어 기아자동차 디자인 담당 부사장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인용하며 기아차 디자인의 지향점을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했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거쳐 기아차에 합류했다. 2008년 그가 합류한 이후 기아차는 ‘호랑이코’ 디자인이라고 불리는 패밀리룩(공통된 디자인)으로 디자인을 혁신하고, 회사 가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그가 합류할 당시 1만원이 안 되던 기아차 주가는 현재 7만원이 넘는다.

기아차 K9

기아차는 최근 제2의 도약을 위해 디자인을 다시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나섰다. 유럽 명차들과 상대할 첫 고급차 K9부터 발전한 디자인 콘셉트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기아차 미래 디자인의 핵심은 이전과 같았다. 기아차 패밀리룩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가져가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29일 서울 신사동 CGV 청담씨네시티에서 열린 디자인 설명회에서 “직선의 단순함이 기아차 디자인 철학의 정수”라면서 “K9을 디자인하며 정밀함과 독특함, 명료함을 직선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피터슈라이어

슈라이어 부사장은 먼저 "자동차는 욕망의 대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동차 디자인에는 이런 매혹과 환상을 담아내야 한다"고 했다. 그는 "K9은 기아차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후륜구동 세단이면서 첫 럭셔리카(고급차)라는 의미가 있다"면서 "존엄성과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했다.

그는 이 날 특유의 방식으로 대형 도화지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기아차의 디자인을 설명했다. 새 K9은 기존 차량보다 긴 보닛과 짧은 트렁크를 갖고 있다. K7의 경우 전체 길이 중 앞부분이 26% 뒷부분이 12%를 차지했지만, K9은 앞부분 길이가 28%로 길어졌고 트렁크는 10%로 짧아졌다. 보통 뒷부분 길이가 앞부분 길이의 절반 정도 되는 것을 기준점으로 삼는다. 뒷부분의 길이가 앞부분의 절반을 넘어서면 보수적인 느낌이 강해진다. K9의 뒷부분은 절반에 훨씬 못 미치는 짧은 모습이다. 옆에서 볼 때 더 고급스러우면서 역동적인 느낌이 든다.

기아차 K9

기아차는 K9의 맨 앞부분을 수직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게 디자인했다. 이는 강인한 느낌을 주기 위한 시도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싸울 의지가 있는 복서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허리를 수직으로 세운다”면서 “강인함을 스타일에 담아낸 것”이라고 했다. 뒤에서 본 모습은 당당하면서도 입체감이 느껴지도록 디자인했다고 슈라이어 부사장은 덧붙였다.

기아차 K9

민창식 외장디자인2팀장은 "K9을 무겁고 권위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성공해 존경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젊은 감각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구상 한밭대 교수는 "호랑이코 디자인이 처음에는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이 연결된 형태였지만 K9은 이것이 완전히 떨어져 있다"면서 "기존 디자인 철학을 재해석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K9을 통해 새로운 고객층을 공략하려는 시도를 했다"면서 "유럽의 고급차 브랜드와 경쟁할 준비를 해왔는데, 어제 K9을 직접 몰아보고 꿈이 실현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