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지난 20일 서울 건국대학교에서 대학생 1000여명을 초청해 '클래식 앤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이날 공연에서는 비발디의 '사계',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등 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노트북 광고에서 나온 클래식 곡(曲)을 오케스트라단이 직접 연주했다. 삼성전자가 새 학기를 맞아 대학생들이 즐겨 찾는 노트북·MP3플레이어 등을 홍보하기 위해 전국 5개 대학교에서 개최한 것이다.

최근 뮤지컬, 클래식 등 다양한 공연문화를 접목한 문화예술 마케팅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그동안 클래식 공연을 비롯한 문화예술 마케팅은 주로 최우수(VIP) 고객 등 특정 소수 집단을 끌어들이기 위한 홍보·서비스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대림산업의 초청으로 서울 종로구 대림미술관을 찾은 어린이들이 전문 강사로부터 미술 전시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그러나 최근 기업들 사이에 기술력뿐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과 문화적 수준까지 아우르는 이미지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일반 고객에게도 클래식 공연, 미술 전시회 등 다양한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마케팅이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경품 추첨·사은품 제공 등 천편일률적인 일회성 이벤트에서 벗어나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기업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클래식·미술 강좌, 공연장 건립 등 사업 다양화

기업이 펴고 있는 대표적인 문화예술 마케팅은 클래식을 비롯해 오페라·뮤지컬 공연을 후원하고 고객들을 초청하는 것.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클래식과 미술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예술 강좌도 크게 늘고 있다.

하나금융은 2000년부터 서울 여의도 하나대투증권 본사에서 누구나 클래식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나 클래식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대림산업은 2007년부터 수도권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를 서울 대림미술관으로 초대해 전문 강사의 설명과 함께 전시회를 참관하는 '꿈나무 예술여행' 프로그램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음악 영재나 문화예술 단체를 후원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심는 경우도 많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77년 문화재단을 설립한 이후 음악 영재와 신진 음악가를 발굴,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하도록 고가의 명품 악기 대여, 콘서트 개최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오페라하우스나 콘서트홀을 지어주며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 기업도 찾을 수 있다.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의 '삼성카드홀'과 '삼성생명홀', 예술의전당의 'CJ토월극장'과 'IBK챔버홀'처럼 기업이 공연장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비용을 지원하는 대신 건물 이름에 기업명을 붙이고 있는 것.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월트디즈니콘서트홀, 일본 도쿄의 산토리홀은 지역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나 콘서트홀 건립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높이는 동시에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공간으로 발전시킨 모범 사례로도 유명하다.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고급스러운 이미지 심어줘

클래식을 비롯한 문화예술 공연은 지난날 다양한 고객의 입맛을 소화하기에 어려운 특화된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나금융이 서울 여의도 하나대투증권 빌딩에서 개최한‘하나 클래식 아카데미’를 찾은 고객들이 첼로 연주를 감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문화예술이라는 차별화된 체험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동시에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직접적인 제품 광고가 아닌 문화예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소비자에게 감성적으로 다가감으로써 별다른 거부감 없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동안 특정 소수를 위한 고급문화로 인식돼 온 문화예술 공연이 디지털·IT기술의 발달로 저변이 확대되고 대중문화로 스며들고 있는 것도 기업이 문화예술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경제 성장과 함께 삶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오페라·뮤지컬, 미술 전시회 등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와 관심이 크게 증가한 만큼 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지원을 통해 소비자의 호응을 얻을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한양대 홍성태 교수(경영학)는 "공연장의 영상·음향 장비에 각종 디지털·IT기술을 접목하거나 정보통신 기기를 통해 다양한 공연을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에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문화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다"며 "기업의 잠재 고객 확보와 이미지 차별화 전략 차원에서 지원사업의 종류와 대상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 김병도 교수(경영학)는 "소비자들의 문화생활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평가 기준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기업의 문화예술 마케팅은 앞으로 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