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전남 담양 수북면 '두리농원'. 상추·케일 등 쌈채소를 친환경 방식으로 재배하는 이곳의 한 비닐하우스에 70세 이상 할머니 10여명 사이로 2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상추 수확에 열심이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20대 중후반 남성들인데, 함께 일하는 10여명의 할머니에 비해 수확 속도가 훨씬 빨라 보였다. 농장주인 김상식씨는 "외국인 노동자의 작업 속도가 30% 정도 빠르다"면서 "파종부터 상품 포장까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전남 담양 두리 농원에서 외국인 노동자 아셋 쎄플로(26·인도네시아ㆍ왼쪽)씨와 아벤다노 제로미 하체코(29)씨가 70대 할머니들 사이에서 쌈채소인 ‘적근대’ 수확 작업을 하고 있다. 할머니들만 일할 때는 더디던 작업 속도가 이들이 투입되자 크게 빨라졌다.

그런데 김상식씨에게 고민이 생겼다. 2년 동안 데리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들이 최근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숙식 제공 외에 한달 130만원을 주고 있는데 20만원가량 올려달라는 것이다. 올려주지 않으면 도시의 공장으로 옮기겠다는 엄포에 김 대표는 좌불안석이다. 이들이 나가면 농장 운영이 불가능해지는데다, 다른 외국인을 구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농가 인구 3명 중 1명 65세 이상

두리농원은 우리 농촌의 인력난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 인구는 296만5000명으로 300만명 선이 붕괴됐다. 한석호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1980년 1082만명 수준이었는데 지난 30년 동안 무려 70%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매년 약 25만명이 농촌에서 사라진 셈이다. 지금 농업인구로 분류되는 사람 중에도 직접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200만명도 안 된다는 게 연구원 추산이다.

충북 충주에 사는 김의충(50)씨는 가족과 함께 3만5000평 밭에 3500그루의 밤나무를 키우고 있는데, 앞으로 재배 면적을 절반으로 줄일 생각이라고 했다. 가을 수확철에 최소한 5~6명의 인력이 필요한데, 사람 구하기가 힘들어 수확을 못할 지경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큰 문제는 농촌 인구 고령화이다. 통계청이 2010년 실시한 농림어업총조사 결과를 보면 2010년 농가 인구 306만2956명 가운데 50대 이상 비중이 61%에 이른다. 가장 많은 연령층은 60대로, 전체 농가 인구의 20.3%를 차지한다. 마을별로 60대가 '청년회' 주축 멤버로 활동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농가 인구 세 명 중 한 명(31.8%)은 65세를 넘긴 노인인 것이 오늘 우리 농가의 현실이다.

전남 곡성군의 이장 김명수씨는 "혈기 왕성한 어린 애들은 시골 분위기를 못 견딘다"며 "언제든 이곳을 뜨려고만 하고, 부모들도 아이들이 대를 잇는 것을 별로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농업에서 비전을 찾을 수 있는 부농의 자식이 아니라면 대부분 농촌을 뜨려고만 한다는 것이다.

간혹 도시에서 일자리를 잡지 못해 대형 농원 등에 취직하는 경우가 있긴 하다. 임금은 대략 월 200만원 선이다. 하지만 대개 3개월 이상을 못 버티고 그만둔다고 한다. 김상식 두리농원 대표는 "임금을 좀 더 주더라도 한국 사람과 일을 하고 싶지만, 오래 버티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 없으면 수확 못 해

지난 1월 10일 오전 경기도 이천 고용지원센터에는 100m가 넘는 긴 줄이 섰다. 모두 외국인 근로자를 배정받으려는 농민들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전국적으로 외국인 근로자 신청을 선착순으로 접수받자 농민들은 조금이라도 빠른 순서를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일부 농민은 배정 이틀 전인 8일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 담요와 가스레인지로 추위를 이겨내며 기다렸다고 한다.

국내에서 일할 사람을 채우는 게 불가능해지자, 외국인 노동자 쟁탈전이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원도 대관령 등에서 이뤄지는 배추·무 같은 고랭지 농업의 경우 외국 인력이 없으면 수확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이 지역 농민 박성주(54)씨는 "고랭지 농업은 농업 중에서도 힘든 편에 속해 국내에선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며 "수확량의 80% 정도는 외국인 노동자 손을 거치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외국 인력을 구하지 못해 농사를 다 지어 놓고도 수확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열매가 썩어 방치되는 것이다. 기계 힘을 빌릴 수 없어 사람이 직접 손으로 따야 하는 고추가 대표적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고추는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직접 손으로 따야 한다"며 "농촌 고령화가 심화되면 국내산 고추를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농민들은 품앗이 등 이웃끼리 돕는 방법을 써보지만,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전익수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민의 83.3%가 인력 부족으로 적기에 파종·수확 등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