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압구정동에 위치한 H&M 압구정점에 1600여명의 고객들이 몰렸다. 이들은 H&M이 마르니와 준비한 콜라보레이션 상품인 '마르니 at H&M'을 구입하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다.

지난 7일 서울 신도림 디큐브시티. 오후 10시쯤 되자 백화점 앞으로 20대 남녀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담요와 두꺼운 점퍼 등을 들고 펴고 길바닥에 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로등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대학생 박모(22)씨는 “내일(8일)부터 판매되는 유명 디자이너의 한정판 상품을 사기 위해 일찌감치 왔다”고 말했다.

SPA(제조·유통 일괄 방식) 브랜드인 H&M이 준비한 콜라보레이션(협업) 상품이 또 한 번 한국 고객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H&M은 이번에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마르니'(Marni)와 손잡고 '마르니 at H&M' 한정판을 내놨다. 마르니는 특유의 프린트와 독창성으로 전 세계 패션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브랜드 중 하나다. 8일 전 세계 H&M 매장 중 260여개 점포에서만 선보였는데 한국에서는 H&M 압구정점을 비롯해 명동 눈스퀘어점, 신도림 디큐브시티점, 신세계##백화점 인천점에서 판매됐다.

신도림 디큐브시티 매장에서는 전날 밤을 새우면서까지 기다린 고객들과 당일 수백명의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리며 개점 2시간 반만인 오전 10시30분에 모든 상품이 판매됐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의 고객은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압구정 매장 역시 개점 1시간 전인 오전 8시에 1600여명이 몰려들면서 장사진을 이뤘다. H&M은 25명씩 그룹을 지어 입장시켜 단 10분만 쇼핑 시간을 허용했다. 명동 매장이나 신세계백화점 인천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1인당 구매 제한을 뒀지만 2만~3만원대 티셔츠부터 10만~20만원대 재킷, 원피스, 니트 등 여성 의류 및 액세서리 60종, 남성 의류 및 액세서리 20종 등 총 80종이 모두 매진됐다. 이러자 일부 구매자들이 인터넷에서 웃돈을 얹어 판매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H&M 관계자는 "그동안 진행했던 다양한 행사 중 이번처럼 호응이 컸던 적은 처음"이라며 "특히 남성 고객이 전체 고객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 열기를 보였다"고 말했다.

◆ H&M 열풍 원인은

스웨덴 SPA 브랜드인 H&M은 지난 2010년 한국시장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유니클로나 자라가 3~5년 전부터 일찌감치 한국 시장에 뛰어들며 영업을 시작한 것에 비하면 뒤늦은 출발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H&M의 성장세가 무섭다. 한국 진출 첫해인 2010년 매출 372억원을 기록하고 작년 632억원을 기록해 약 2배 성장했다. 전국에 6개 매장이 있는데 1개 매장당 매출이 100억원에 육박한다. 영업이익은 약 4배 증가한 81억원, 순이익 역시 3배 증가한 61억원을 기록했다.

H&M이 이처럼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뭘까. 먼저 저렴한 가격에 뛰어난 디자인을 지닌 상품을 살 수 있다는 매력이다. H&M은 이번에 행사를 한 ‘마르니 at H&M’ 등 유명 디자이너나 명품업체들과 손잡고 매 시즌 콜라보레이션 상품을 내놓고 있다. 과거 랑방, 베르사체 등과 내놓은 콜라보레이션 상품 역시 줄을 지어 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명품 브랜드를 사기 위해 큰 비용을 지출해야 되는 소비자 입장에선 명품을 저렴하게 손에 넣을 기회인 셈이다.

H&M 관계자는 “2004년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로베르토 카발리, 스텔라 매카트니, 빅터앤롤프, 콤 데 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 지미 추, 매튜 윌리엄슨, 소니아 리키엘, 랑방의 알버 앨바즈, 베르사체 등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작업해왔다”며 “이를 통해 SPA 브랜드도 패션업계의 이슈를 만들어 내는 핫 아이템이라는 걸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업체로 불리는 유니클로와 자라와의 가격 정책에서도 차별화를 두고 있다. H&M은 유니클로보다는 비싸고 자라보다는 저렴한 가격 정책을 통해 소비자들이 부담없이 상품을 사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 각 품목의 가격대를 최소 1만원 이하에서 최대 20만원대 이상까지 책정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것도 특징이다.

한 패션업계 관계자는 “국내 SPA 시장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이들 브랜드들역시 모두 활황세를 보이고 있다”며 “특히 H&M의 경우 저렴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브랜드 정책이 한국 소비자에게 크게 어필되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