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이 아닌 민간이 스스로 게임물 심의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 작년 말 국회에서 아케이드게임, 청소년 이용불가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 게임물에 대해서는 민간심의가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은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게임서비스를 할려면 등급분류기관인 게임물등급위원회(이하 게임위)를 거쳐야만 했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게임에 대한 자율심의가 보편화돼 있고, 인력·예산부족으로 게임위의 심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자율심의제를 도입하기에 이른 것이다.

애플·구글 조차 한국만의 게임 사전심의제도에 불만을 가지고 오픈마켓에서 게임카테고리를 닫아놓았다가 최근에서야 문호를 개방했다.

자율심의는 심의절차의 간소화 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게임업계의 기대를 받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한국컴퓨터산업중앙회라는 민간단체가 게임심의를 하다 비리에 연루됐고, 공공기관 심의체제도 업체들의 편법행위를 제대로 적발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율심의가 제대로 정착될 지는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심의 적체 해소 기여…사전보다는 사후심의에 초점

게임위가 1년에 등급분류를 위해 다루는 게임물수는 1만5000건에 달한다. 현재 게임위에서는 20명이 안되는 등급위원들이 이 게임들을 심의하고 있다. 게임위에서도 "업무량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올 하반기부터 민간에서 심의할 수 있는 게임물(아케이드·청소년이용불가 게임을 제외한 게임)은 게임위가 처리하고 있는 심의건수의 60~70%에 달한다. 따라서 게임위가 감당해야할 심의건수가 줄어들고, 심의에 걸리는 시간도 단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사전심의 기능이 축소되면 게임업체로서는 창작의 자유도 커져 좀 더 과감한 그래픽 등을 사용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또한 사전심의 기능을 줄이는 대신 사후심의를 강화, 심의기능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다는 것도 자율심의제를 도입하게 된 배경이다. 독일·호주·싱가포르를 제외한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전심의보다는 사후심의를 선호하는 추세다.

민간심의가 도입되면서 국고 보조로 운영되던 게임위는 올 연말까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기로 돼 있다. 아케이드게임과 청소년이용불가 게임에 대한 민간심의 이양 여부는 추후에 결정될 예정이지만 현재로서는 게임위의 존속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 객관적인 심의 가능할까…사행성 게임 쏟아질수도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국내에서 게임에 대한 자율심의제도를 도입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게임업체들이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불법이벤트를 종종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전심의 제도에서도 등급을 받은 뒤 업데이트나 패치 등의 작업을 통해 게임물을 변조하는 수법이 목격돼 왔기 때문에 감시기능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아울러 민간심의를 하게 되면 심의의원을 둘러싼 로비와 함께 게임업체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위원을 내세우기에 바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심의위원들의 객관성 확보와 전문인력 배치가 민간심의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만약 민간에 자율로 맡긴 게임심의제도에 문제가 생긴다면 정부가 또다른 규제안을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동안 사전심의제도에서 게임위의 가장 큰 역할이 사행성 게임을 가려내는 것이었는데 민간심의가 되면 업체들이 돈벌이를 하기에 좋은 사행성 게임들이 시장에 여과없이 쏟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