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와 RNA 같은 유전물질을 치료물질 전달체로 만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국내외에서 잇따라 발표돼 과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DNA의 유전정보는 RNA를 거쳐 인체 내부의 모든 기능을 좌우하고 골격이 되는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이종범 서울시립대 교수(화학공학)는 RNA 가닥이 길어지면 서로 달라붙어 공 모양을 만드는 이른바 '자기조립' 성질을 이용했다. 이 교수는 연구 재료로 치료 효과가 있는 '짧은 간섭 RNA'(siRNA, small interfering RNA)를 썼다. 과학자들은 최근 RNA가 DNA의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닥이 아주 짧은 형태일 때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차단해 암과 같은 질병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RNA 간섭'이라고 한다.

이 교수는 수만개의 siRNA를 자기조립시켜 스펀지 모양의 구조물을 만들었다. 병든 세포에 이 스펀지를 넣으면 수만개의 유전자 치료제를 동시에 전달하는 셈이 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26일자 인터넷판에 실렸다. 이 교수는 "생쥐실험에서 RNA 스펀지는 독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 하버드대 와이스연구소의 과학자들은 지난 22일 '사이언스'지에 DNA로 항암물질을 전달하는 나노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나노로봇은 조개와 같은 형태다. 조개껍데기는 DNA 가닥들로 만들었으며 아래위 껍데기 사이에는 또 다른 DNA가 일종의 경첩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DNA 나노로봇에 백혈병 치료제를 넣고 수만개를 백혈병에 걸린 혈구 세포에 주입했다. 백혈병에 걸린 세포에는 특정 분자가 있는데, 나노로봇을 만나면 경첩 역할을 하는 DNA의 한 가닥과 결합한다. 이러면 경첩의 DNA 이중나선이 풀리고, 조개껍데기가 열리듯 나노로봇이 벌어져 약물이 방출된다. 실험 결과 백혈병에 걸린 세포의 절반이 죽었으며, 건강한 혈구 세포에는 해를 입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